북한이 영변 원전을 재가동한 정황이 9월에 공개됐을 때 웬디 셔먼 국무부 정무차관이 이끄는 미국의 이란 핵 협상팀은 깜짝 놀랐다. 3월부터 이란 측과 비밀리에 접촉해온 이들은 당시 협상 타결을 시도하고 있었다. 특히 협상 대표 셔먼은 무함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에게 최대 쟁점인 핵 시설 불능화를 설득하던 중이었다. 이런 때 북한이 원전을 재가동한 것은 협상팀에 적지 않은 압박이 됐다. 이란과 진행하던 협상이 2007년 북핵 10ㆍ3 합의로 영변 원전에 취해진 것과 같은 핵 불능화 조치에 목표를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협상팀을 괴롭힌 것은 협상이 외견상 잘되는 것 같아도 실제로는 잘못될 수 있다는 망령이었다고 24일(현지시간) 전했다.
미국은 이날 이란과 임시 핵 협상을 타결하고도 북한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존 케리 국무장관은 미국 언론과 가진 연쇄 인터뷰에서 이란 핵과 북한 핵의 차이를 설명하느라 애를 먹었다. 케리 장관은 이란은 ▦핵무기비확산조약(NPT)을 탈퇴하지 않았고 ▦핵무기 제조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며 ▦핵 시설 사찰을 수용했다고 밝혔다. 반면 북한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핵실험을 해왔으며 ▦비핵화 정책을 선언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케리와 셔먼은 "이번 협상이 이란 핵 문제를 해결할 것이란 환상을 갖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이처럼 신중한 태도를 보인 것은 이스라엘은 물론 공화당과 민주당에 이란이 북한식 모델을 따를 것이라는 의심이 많기 때문이다. 북한식 모델이란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시간을 벌기 위해 협상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하워드 매키언 하원 군사위원회 위원장은 "미국이 1994년 북한과의 제네바 합의에서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있다"며 "이번 협상도 파기된 제네바 합의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이런 점을 의식한 듯 이날 오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게 전화해 "이란의 의도를 의심하는 건 당연하다"고 말했다. 통화에 앞서 네타냐후는 "이번 협상은 역사적 실수"라며 "단지 이란 핵무기 생산을 늦췄을 뿐"이라고 비난했다. 이스라엘은 이란 핵 협상이 핵 시설을 불능화하는 북한식이 아니라 핵 장비 및 핵 물질 능력까지 제거하는 리비아식 해법이 되기를 원하고 있다. 조지 W 부시 2기 행정부에서 북핵 협상을 이끈 크리스토퍼 힐 전 동아태 차관보는 "북핵 협정(10ㆍ3조치)이 5년간 지속됐는데 나쁜 건 아니다"며 "그렇지만 모든 것이 뒤바뀔 수 있다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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