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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이주일의 小史] <113> 홍수환, 4전5기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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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이주일의 小史] <113> 홍수환, 4전5기 신화

입력
2013.11.25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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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11월 27일 파나마시티 특설경기장.

파나마 국민들의 일방적인 함성과 함께 2라운드 공이 울렸다.

탐색전을 통해 가벼운 잽을 주고 받은 것도 잠시, 검은 피부에 흰 이를 드러낸 17세의 청년 헥토르 카라스키야가 홍수환을 거칠게 밀어 붙였다. 접근전을 펼치다 몸이 떨어지는 순간 카라스키야의 왼손 스트레이트가 뻗어 나왔고 얼굴을 정통으로 가격당한 홍수환은 그대로 링 위에 쓰러졌다. 첫 번 째 다운이었다.

'지옥에서 온 악마'라는 별명답게 11전 전승을 KO로 장식한 카라스키야는 거침이 없었다. 왼손 훅에 이은 강력한 원투 펀치는 2라운드에서만 홍수환을 네 번이나 링 위에 주저앉혔다. 경기를 중계하던 TBC 박병학 캐스터마저 "아, 역부족입니다"를 연발하며 안타까운 탄식을 내뱉었고 경기는 그대로 끝이 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상대는 홍수환이었다. 프로데뷔 40전을 치르며 산전수전 다 겪은 노장이 이대로 무릎을 꿇을 수는 없었다.

3라운드가 시작되자 홍수환은 코너에서 용수철처럼 튕겨 나왔다. 바로 직전 수 차례 다운을 당한 선수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몸놀림도 가벼웠다. 공이 울림과 동시에 좌우스트레이트를 퍼부으며 카라스키야를 코너로 몰아붙인 홍수환은 비어있는 복부를 훅으로 가격한 후 비틀거리는 상대를 향해 묵직한 카운터 펀치를 날렸다.

그걸로 끝이었다. 링 위에 길게 누운 카라스키야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고 놀란 관중들을 향해 홍수환은 두 팔을 들어 환호했다. 4전5기의 신화가 쓰여지는 순간이었다.

1977년 11월 27일 파나마시티 특설링에서 열린 WBA 슈퍼밴텀급 타이틀 결정전에서 홍수환은 초대 챔프에 등극하며 두 체급을 석권했다. 3년 전 지구 반대편 남아공 더반에서 아놀드 테일러를 누르고 밴텀급 타이틀을 차지한 후 다시 맛보는 감격이었다. 당시 라디오를 통해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그래, 대한국민 만세다"로 히트를 친 홍수환은 경기를 마친 후"자식이 건방져서 꼭 이기려 했습니다"라는 인터뷰를 통해 대한민국 국민을 다시 한번 웃게 만들었다. 밴텀급에서 체중을 올린 후 4강전에서 친구 염동균을 누르고 결승에 진출한 터라 기쁨은 배가 됐다.

하지만 챔피언의 영광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일본의 가사하라를 상대로 1차 방어는 성공했지만 2차 방어전에서 콜롬비아의 리카르도 키르도나를 맞아 졸전 끝에 타이틀을 내주고 말았다. 동거 중이던 가수 옥희를 때린 것이 문제가 돼 80년 선수생활까지 접게 됐고 이후 미국 알래스카로 떠나 택시 운전과 접시닦이를 하는 등 고난의 시기를 겪었다.

92년 영주권을 포기하고 한국에 돌아온 홍수환은 17년 만에 옥희와 재결합했고 지금은 복싱체육관을 운영하며 전국에서 4전5기 인생신화를 강의하고 있다.

손용석기자 st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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