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창업하면서 벤처캐피탈(VC) 업체로부터 10억원의 투자를 받았던 한 소프트웨어 업체는 최근 5년 만기 기간이 다가오면서 원금 상환 요구를 받았다. 원금을 상환하기 위해 다른 투자처를 찾았지만 실적부진 등으로 결국 투자 유치에 실패했다.
신제품 개발에 나선 한 게임업체도 한 VC업체에 5억원 상당의 투자를 요청했지만 심사에서 탈락됐다. 게임개발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시장성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정부가 벤처기업들을 육성하기 위해 모태펀드, 미래성장펀드, 성장사다리펀드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지원자금을 쏟아 붓고 있지만, 막상 투자가 절실한 창업 3~7년 차의 유망 중기(中期) 벤처들은 투자를 받지 못해 안타까워하고 있다.
창업 3년 이내의 초기기업은 정부 정책으로 투자가 늘어났고, 7년 이상 된 후기기업들은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갖추고 있고 단기간 내 기업공개가 가능해 민간 투자가 원활하다. 반면 어렵게 창업에 성공해 공격적인 투자를 해야 하는 시기의 중기벤처들은 투자자로부터 외면당하기 일쑤다.
한 벤처기업 대표는 "일반 제조업과 달리 정보통신기술(ICT)산업은 수익모델 자체를 새로 만드는 경우가 많고 이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까지 상당한 기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데, 창업 3년 동안 갖은 노력으로 새 기술로 이윤을 낼만한 새 시장을 창출해 추가 투자가 절실한 순간부터 기존 초기투자는 상환요구가 들어오고 새로운 투자는 받기가 쉽지 않아 좌절하는 벤처 사업가들이 많다"고 말했다. 한 소셜커머스업체는 벤처기업으로 3년간 초고속 성장을 했지만 최근 투자부진 등의 이유로 대기업에 인수됐다. 이 업체 대표는 "창업 2,3년 뒤에 기업이 안정화되면 회사유지나 기술개발 등을 위해 추가투자가 필요하게 된다"며 "이때 투자를 받지 못하면 성장에 한계가 있을 뿐 아니라 초기에 거둔 성과도 지키기 어렵다"고 밝혔다.
VC업체들의 투자기간이 짧은 것도 중기기업들의 발목을 잡는다. 한국VC협회 자료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운용된 540개의 펀드 평균존속기간은 6.3년이었다. 존속기간 5년인 펀드가 229개로 55.4%를 차지해 가장 많았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을 설립해서 주식시장에 상장되기 까지 통상 10년이 걸리는데 중간에 자금을 회수하기 때문에 유망한 기업이 자금난 때문에 제대로 꽃피우지 못하고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런 구조적 문제 때문에 VC로부터 투자를 받은 신규 벤처기업 중 코스닥시장 기업공개(IPO)에 성공한 기업은 2005년 49곳에서 올해 8곳으로 줄었다.
반면 VC는 투자기간이 너무 길어 자금을 모집하기 쉽지 않다고 말한다. VC 관계자는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경우 리스크가 크면서도 장기간 자금이 투입돼야 하기 때문에 민간 자금이 들어오기가 쉽지 않다"며 "또 정부 재원은 안정위주로 운용할 수 밖에 없어 신생이나 중기벤처에 적극적으로 투자 하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미국은 2011년 기준 총 벤처투자금액이 516억달러(54조7,734억원)로 국내총생산(GDP)의 0.34%를 차지하지만, 한국은 GDP대비 벤처투자비율이 0.12% 수준이다. 그나마 국내 벤처펀드 출자자 중 정부 비중이 44.3%나 차지한다. 민간 자본이 벤처 육성에 얼마나 소극적인지 짐작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제라도 중기기업에 투자하는 전용펀드를 조성해 유망 벤처기업이 '투자 보릿고개'의 고통을 겪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벤처투자 관계자는 "초저리 금융상황에서 투자처를 찾지 못하는 민간자금이 넘쳐나는 상황인 만큼 이들 자금이 벤처로 유입될 수 있도록 장기투자를 하더라도 적절한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는 금융 유인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청은 문제 해결을 위해 중기기업 전용펀드를 만들고 VC업체들의 투자를 독려하기 위한 중기기업 기업설명회(IR)를 개최할 예정이다.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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