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다음 제시문은 사람, 세계, 사물의 관계에 대한 글들이다. (30점)
1) [가]에서 이상적인 관계를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두 단어를 찾은 후, 그 단어들을 이용하여 이 글의 주장을 요약하시오. (300자 내외, 15점)
2) [가]에 제시된 이상적인 관계의 비유적 예가 될 만한 가장 적절한 단어 하나를 [나]에서 찾아 [나]의 내용을 요약하고, [가]의 입장에서 [다]의 화자(話者)가 후회하는 이유를 요약하시오. (300자 내외, 15점)
[제시문 가]
아프리카에서 당신의 피아노 연주를 듣게 된 것은 우연한 일이었지만 내게는 참으로 뜻깊은 것이었습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듣는 피아노 선율은 내게 흑과 백의 조화를, 그리고 반음과 온음의 조화를 깨닫게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피아노 선율은 흑백의 건반이 서로가 도움으로써 이루어 내는 화음을 생각하게 하였습니다. 흑과 백의 대립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맺고 있는 모든 갈등에 관하여 생각하게 하였습니다.
피아노는 우리에게 반음(半音)의 의미를 가르칩니다. 반(半)은 절반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반(伴)을 의미합니다. 동반(同伴)을 의미합니다. 모든 관계의 비결은 바로 이 반(半)과 반(伴)의 여백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절반의 환희'는 절반의 비탄과 같은 것이며, '절반의 희망'은 절반의 절망과 같은 것이며, '절반의 승리'는 절반의 패배와 다름없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절반의 경계에서 스스로를 절제할 수만 있다면 설령 그것이 희망과 절망, 승리와 패배라는 대적(對敵)의 언어라 하더라도 얼마든지 동반의 자리를 얻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칼날 같은 우리의 관계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하는 새로운 동락(同樂)의 공간을 열어 나가기 바랍니다.
신영복, '반(半)은 절반을 뜻하면서 동시에 동반(同伴)을 뜻합니다', , 창작과비평사
[제시문 나]
다듬이질은 혼자서도 하고 둘이 마주앉아 하기도 했다. 혼자 하는 소리는 좀 둔탁한 느낌이었지만, 맞다듬이질을 할 때의 그 소리는 경쾌하고도 청량한 것이었다. 휘영청 달이 밝은 가을밤에 혼자 뒷간에 앉아 있자면, 마을은 온통 그 경쾌하고 청량한 다듬이소리 투성이었다. 소년은 그 다듬이소리에 취했다가 달 한 번 쳐다보고, 그리고 갑자기 생각한 듯이 아랫배에다 힘을 주었다. 그러다가 뒷간을 나와 보면, 환히 불 밝은 아래 방문에 맞다듬이질하는 그림자가 보였다. 그때 사립문 뒤에 세워 놓은 수숫대의 마른 잎사귀가 우수수 소리를 내기도 했다. 어디선가 컹컹 개 짖는 소리도 들려왔다.
정진권, '다듬이', , 지학사
[제시문 다]
그 말은 내가 중학교 3학년일 때까지 집에 있었다. 내가 저를 핍박하고 서러움 줄 때 그는 이미 늙어 있었다. 그가 죽던 마지막 모습도 그랬다. 말굽을 박았는데도 공사장에서 벽돌을 내릴 때 땅에서 바로 선 대못을 밟아 오른쪽 앞다리부터 못 쓰게 되더니 한 해 겨울을 한쪽 다리를 늘 구부린 채 서서 앓다가 어느 날 배를 땅에 대고 만 것이다. 알리지 않았는데도 어떻게 알고 시내의 마부들이 마차를 끌고 와 죽은 그를 싣고 내려갔다. (중략) 한 지붕 아래에서 사는 동안 그는 내게 참으로 많은 설움과 눈총과 미움을 받았다. 내가 누리는 것 모든 것이 그의 등에서 나왔는데도 그랬다. 아마 그가 죽어 정말 하늘의 은별이 되었다 해도 나는 앞으로도 말에 대해 자유롭지 못하고, 그에 대해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결국 그 원고에 나는 그의 이야기를 쓰지 못했다. 그러나 언젠가 나는 그의 슬픈 생애에 대해 제대로 글을 쓸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다린다. 그는 태어나기로도 암말과 수나귀 사이에서, 온갖 핍박 속에 오직 무거운 짐과 먼 길을 걷기 위해 생식력도 없는 큰 것만 달고 나온 노새였고, 이름은 은별이었다.
이순원, '말을 찾아서', , 좋은책신사고
[1번 예시 답안]반음에 절반과 동반의 의미 엿보여… 동반의 자세로 동락의 공간 열어야
피아노 선율은 흑과 백의 조화, 반음과 온음의 조화를 통해 수 많은 갈등 속에 사는 우리를 반성하게 한다. 또한 피아노의 반음에서 동반의 자세를 엿볼 수 있다. 이러한 동반의 자세는 절반을 뜻하는 반과 동반을 뜻하는 반의 여백에서 나온다. 절반의 환희는 절반의 비탄을, 절반의 희망은 절반의 절망을, 절반의 승리는 절반의 패배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런 대조적인 의미들도 반과 반의 여백에서 스스로를 절제한다면 동반의 자리를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자세를 통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갈등을 해결하고 동락의 공간을 열어야 한다.
정현수ㆍ원주 대성고 3학년
[문제 분석과 답안 총평]가장 중요한 두 단어가 무엇인지 더 명확하고 직접적인 표현 필요
단국대 논술은 소문항을 포함, 총 4문항을 풀어야 한다. 그 중 1번 문항은 2개의 소문항으로 구성돼 있다. 각 소문항은 300자 내외의 짧은 분량을 요구하는데 두 문항은 공통적으로 제시문의 내용을 요약하는 것을 요구하고 있다. 구체적인 사례에서 지은이가 주장하는 바 또는 설명하고자 하는 내용만을 선별해 정리하면 된다.
그 중 첫 번째 문제의 소문항 1)에 대한 위 답안은 중요한 실수를 저지른 답안이다. 문제가 요구하는 첫 번째 사항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문제에서는 제시문 [가]를 통해 사람, 세계, 사물의 이상적인 관계를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단어 두 개를 찾으라고 했다. 안타깝게도 이 답안에는 어떤 단어들이 가장 중요한 단어인지 분명하게 드러나 있지 않다. '[가]에서 사람 혹은 사회적 집단들 사이의 이상적인 관계를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두 단어는 동반(同伴)과 동락(同樂)이다'는 표현 정도로 제시문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단어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야 한다.
또 아쉬운 점은 학생이 제시문 자체가 비유가 많은 문학 작품이라는 점을 간과했다는 점이다. 비유법이 많이 사용되는 문학 작품에서는 제시문의 표현을 그대로 축약하는 경우 요약문 자체가 내용 파악이 쉽지 않은 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수험생이 작성한 요약문만을 보자면 '절반의 비탄, 환희, 고통, 승리, 패배' 등의 표현 등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쉽게 이해가 가지 않게 만드는 표현들이다. 더군다나 주어를 표현하지 않아 주체도 누구인지가 불분명해 요약한 글은 더욱 독해하기가 어렵다. 제시문 [가]는 사실상 피아노의 온음과 반음의 조화를 통해 우리 인간들이 다른 사람과의 대립과 적대의 관계를 넘어서 더불어 사는 동반(同伴)의 삶의 길과 더 나아가 함께 기쁨을 나누는 동락(同樂)의 공간을 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작성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김경석ㆍ종로학원 논술강사
[2번 예시 답안]아낙들 맞다듬이질에 동반 정신 보여… 돌보는 대신 핍박하던 말이 죽자 반성
[나]에서 맞다듬이질은 혼자하는 다듬이질보다 경쾌하고 청량한 소리를 낸다. 이는 조화와 동락을 지향하는 [가] 반과 반의 관계와 같은 맥락을 지닌다. 맞다듬이질의 소리는 마을을 가득 채우기도 했다. 맞다듬이질은 마을 아낙네들의 동반의 정신을 보여주던 것이었다. [다]의 화자는 오랫동안 키우던 말의 죽음에 안타까워하고 후회한다. 왜냐하면 화자는 말의 생전에 말을 핍박하고 미워했기 때문이다. 그는 말과 공존하며 살아가는 동락의 자세를 깨닫지 못했다. 그래서 말이 죽고 난 뒤 동반의 자세로 말을 돌보지 못한 자신을 반성하고 후회하는 것이다.
정현수ㆍ원주 대성고 3학년
[문제 분석과 답안 총평]이상적 관계를 비유하는 단어가 왜 맞다듬이질인지 설명이 빠져
수험생들은 짧은 분량을 작성하는 문제에서 단순하게 생각을 해 실수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답안도 예외는 아니다. 앞의 답안과는 달리 첫 문장에서 사람과 사물, 세계의 이상적인 관계를 비유하는 단어인 '맞다듬이질'을 찾아낸 것은 분명 문제의 요구사항을 충족한 것이다.
그러나 '맞다듬이질'이라는 단어가 사람과 사물, 세계의 이상적인 관계를 비유하는 단어인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는 내용이 없다. [나]에 대한 요약은 분명히 '맞다듬이질'이 이상적인 관계를 나타내는 적절한 비유인가를 설명하는 내용으로 귀결이 되어야 한다. 맞다듬이질은 혼자가 아닌 다른 사람과 함께 서로 박자를 맞추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기 때문에 동반, 동락의 관계를 잘 나타내는 단어라는 설명으로 요약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구체적인 사례인 밤깊은 마을의 맞다듬이질의 소리에 반응하듯 우수수 소리내는 수숫대의 마른 잎사귀, 컹컹 짖는 개, 흥연히 기분 좋아 달밤의 정취를 누리는 소년 등을 통해 사람과 사람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물, 자연과의 동반과 동락을 이끌어내고 있다는 점을 서술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아쉬운 점은 [가]의 입장에서 [다]의 화자인 소년이 죽은 말을 보고 후회하는 이유를 작성하지 못한 점이다. 소년이 말을 무턱대고 핍박하고 미워해서 동락과 동반의 관계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내용만을 작성한 것으로는 충분한 이유가 서술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상대방인 '말'로부터 소년 '자신이 누리는 모든 것을 얻어냈음에도 불구하고'라는 이유를 포함해 그 '말'을 일방적으로 미워하고 핍박했다는 내용의 서술이 연결된다면 출제의도에 맞게 자연스러운 답안 작성이 가능하리라 보인다.
김경석ㆍ종로학원 논술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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