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벽은 사람을 유혹하는 것 같다. 어떻게든 활용하고 싶게끔 말이다. 지상이든 지하든 거리의 벽들은 온통 광고판으로 도배되어 있다. 지하철 스크린도어에는 어떤 기관에서 선정한 시들이 칸칸이 붙어 있다. 좀 답답하다. 그저 흰 벽, 투명한 유리벽이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하지만 그렇게 될 일은 없을 것이다. '위'에서 허가한 광고나 시들이 없더라도 벽은 '밑'에서부터 채워져 갈 테니까. 공중화장실 벽이나 이웃집 담장에 낙서가 늘어가듯 빈 벽은 일기장이나 도화지처럼 활용되기도 한다. 얼마 전 코레일 열차에 대형 그라피티가 그려졌다는 뉴스를 접했다. 무단이네 불법이네 말들이 많은가 본데, 솔직히 대문짝만한 광고를 옆구리에 차고 돌아다니는 도심의 버스들보다는 훨씬 낫지 않나 싶다.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위'에서 합법적으로 채워 넣은 것들보다 '밑'에서 자유분방하게 채워 넣은 것들이 나에게는 더 보기 좋다. 바스키아, 뱅크시, 키스 해링 같은 사람들은 낙서를 예술로 만들지 않았던가. 물론 모든 낙서가 예술이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수많은 낙서 속에서 예술이 싹트기는 한다. 어떤 작가는 누가 쓴지도 모르는 화장실 벽의 낙서가 자기에게 잊히지 않는 유일한 시라 하기도 했다. 거리의 사람들을 수동적인 소비자로 잡아두는 대신 때로 거칠고 자유로운 예술가가 되게 하는 너그러운 빈 벽. 그런 벽이 많은 도시를 꿈꿔 본다.
신해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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