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대생들에게도 금융중개이론은 그리 재미있는 과목이 아니어서 수업시간에 되도록 흥미를 돋울 수 있는 사례들을 많이 이야기해주려고 하는 편이다. 언젠가는 학기 첫 강의시간에 "왜 금융회사 직원들의 월급이 높을까?"라는 질문을 하고 이에 대해 토론한 적이 있다. 학생들이 취업과 사회진출에 관심이 많으니만큼 이 질문에 대해서 흥미를 느끼지 않을까 해서였다. 아닌 게 아니라 여러 학생들이 다양한 답을 제시하면서 토론이 잘 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우리나라 고용시장에서 가장 높은지는 모르겠으나 금융회사의 보수 수준이 높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금융회사는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예를 들어 미국의 월스트리트에서는 골드만삭스와 같은 투자은행의 직원들이나 헤지펀드 매니저 등이 매우 높은 임금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의 경우 성과급의 비중이 매우 크며 업무 성과가 나쁠 경우 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으므로 높은 급여의 일부는 위험 프리미엄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서 투자은행업에 대한 특집 기사를 쓰면서 투자은행을 경영하는 것은 영국 프리미어 리그의 축구팀을 운영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한 적이 있다. 투자은행들은 직원 개개인의 능력에 대해 크게 의존하고 있고 예산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도 매우 높기 때문이다. 반대의 시각에서 투자은행 직원도 축구선수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 높은 급여와 화려한 생활을 누릴 수 있지만 수명이 길지 않고 항상 투자 실패(부상이나 부진)의 위험을 안고 있다. 우리나라도 금융투자회사 등 자본시장 관련 업종의 경우 이와 같은 급여 형태가 늘어나고 있으나 아직 해외 수준까지는 못 미치고 있다.
그럼 성과급의 비중이 높지 않은 다른 업종은 어떨까? 은행업은 앞에서 말한 투자은행업에 비해 직원 개개인의 능력에 대한 의존도가 높지 않고 장치산업에 더 가까운 편이다. 따라서 성과급의 비중이나 해고의 위험이 훨씬 더 낮다. 그런데 국내의 상황을 보면 은행업종이 다른 금융업종에 비해 보수가 낮지 않고 복지 수준까지 따지면 더 선호되는 편이다. 그럼 성과급의 비중도 높지 않고 해고 위험도 낮은 데도 불구하고 급여가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원인들이 함께 관련되어 있겠으나 중요한 한 가지는 은행 직원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것이다. 은행 직원들은 업무상 늘 고객의 돈과 재산을 다루게 된다. 큰 돈을 만질 때에는 도덕적 해이나 심지어 범죄 행위의 유혹을 느낄 수도 있는데 이를 차단하는 장치가 몇 가지 있다. 먼저 은행 직원들을 직접 감시ㆍ감독하는 것인데 그 비용을 계산할 때에는 감시 및 감독에 따른 업무 비효율성도 포함해야 하며 나아가 감시자 또는 감독자를 다시 감시ㆍ감독해야 하는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한편 은행 직원들이 스스로 도덕적 해이 등으로부터 자제하도록 유인 구조를 설계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높은 수준의 급여와 안정된 직장이 제공되는 경우 큰 돈을 만지더라도 일회성에 불과한 수입을 좇지 않고 향후 높은 급여를 오랜 기간 동안 받는 것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은행 직원들의 높은 급여는 귀중한 재산을 맡기는 데 따른 불가피한 비용의 일종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국민은행 직원의 국민주택채권 횡령 사건 등 은행권에서 벌어진 것으로 드러난 여러 사고들을 보면 앞에서 논의한 장치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어디에서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인지 파악하고 이를 개선하는 작업이 시급하며 정책당국이나 감독당국에서 올바른 해결책을 내놓길 기대한다. 다만 현재까지 드러난 바에 따르면 도덕적 해이나 범죄 행위를 손쉽게 찾아낼 수 있는 내부통제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 아무리 높은 급여를 받더라도 발각될 확률이 거의 없다면 횡령의 유혹을 좇기 쉬우며 오늘날 거대한 금융회사의 복잡한 업무를 밖의 감독자가 일일이 감시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강경훈 동국대학교 경영대학 부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