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거야!"
불치병을 주제로 한 로맨스 영화의 고전 '러브스토리'에서 여주인공이 백혈병으로 죽어가며 한 말로, 아직까지도 백혈병과 함께 기억나는 명대사이다. 과거에는 백혈병이나 위암, 폐암 등이 불치병으로 영화 속 주인공을 죽음으로 이르게 하였다. 그러나 이런 악성종양들이 조기진단과 치료법의 발달로 완치되는 비율이 높아지자, 흔히 보기 힘든 희귀질환들이 사망원인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제는 불치병이 아니고 적절한 치료를 통해 관리가 가능한 에이즈도 과거에는 영화의 좋은 소재였다. 에이즈환자인 동성애자 변호사(톰 행크스)를 그린 '필라델피아', 수혈로 인해 에이즈에 감염된 어린아이의 이야기인 '굿바이 마이 프랜드', 에이즈에 걸린 다방아가씨와의 사랑 이야기 '너는 내 운명' 등이 있었다.
질병은 영화의 구성이나 진행을 위한 도구로 쓰이기도 하지만 아예 질병 자체가 영화의 주제가 되기도 한다. 변종 기생충을 다룬 '연가시', 신종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다룬 '감기'가 흥행에 성공하였고, '월드워Z' 같은 좀비영화는 바이러스를 매개체로 하는 일종의 질병 재난영화이다. 그런데 이렇게 드물고 이름조차 생소한 질병 말고, 흔히 볼 수 있는 현실감 나는 질병이 등장하는 영화는 없을까? 수많은 질병 관련 영화 속에서도 비뇨기과 질환은 비중 있게 다뤄지지 못했지만, 남성들의 가장 흔한 질환인 전립선을 정말로 실감나게 표현한 영화가 있다.
2000년 개봉한 '그린 마일(The Green Mile)'은 드라마, 판타지, 미스터리를 섞어 놓은 영화로 교도관(톰 행크스)과 소녀 살해범이라는 누명을 쓴 흑인 사형수와의 관계를 그렸다. 교도관은 소변을 볼 때마다 '마치 면도날로 베는 것 같다'며 힘들어 한다. 배뇨장애와 함께 통증, 성기능장애, 그리고 오한으로 쓰러지는 정황으로 미루어 전립선염으로 추정된다. 영화의 시대인 1935년에는 치료용 페니실린이 보급되기 전이라 불치병으로 취급되었을 것이다. 신비한 치유능력을 가지고 있던 사형수가 이렇게 고통 받는 모습을 보고는 교도관의 아랫도리를 쥐는 것으로 병을 치료해준다. 미심쩍어하며 화장실로 간 톰 행크스는 통증 없이 소변을 보고, 그날 밤에는 부인과 4번의 관계를 가질 만큼 성기능도 회복된다. 시원하게 소변을 보는 톰 행크스의 황홀한 표정과 하룻밤에 4번의 절정감을 맛본 부인의 행복한 모습은 전립선염이 완치된 상태를 사실적으로 표현한 명장면이다.
전립선비대증은 50대 이후 남성들의 절반 이상에서 발생하는 흔한 질환이다. 소변을 보기 힘들고 줄기가 약하고 봐도 시원치 않은 등의 다양한 배뇨장애를 일으킨다. 이러한 불편함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영화가 2012년 개봉한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의 '내 인생의 마지막 변화구(Trouble with the Curve)'이다. 나이가 들어 눈도 나빠지고 시대에 뒤떨어져 은퇴를 강요 받는 프로야구 스카우트인 주인공이 마지막 스카우트 출장여행을 딸과 동행하면서 가족애를 회복하고 노년기라는 인생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맞이한다는 내용이다.
이 영화의 처음은 아침에 일어난 주인공이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변기 앞의 벽을 잡고 서서 쪼르륵 소리와 함께 힘을 주며 혼자서 중얼거린다. 무려 30초간 지속되는 이 장면은 "꾸물거리지 말고 얼른 나와, 제발"이라고 사정을 하다가 드디어 "이제야 살 것 같군. 좋아"라는 독백으로 마무리된다. 아마 주인공이 늙었다는 사실을 배뇨장애로 대신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전립선염이나 전립선비대증이나 최근에는 이렇게 고생할 필요 없이 약물요법으로 쉽게 치료가 된다. 날씨가 차가워지는 겨울철에는 전립선질환이나 성기능장애가 악화될 수가 있으므로, 더욱 주의를 하여야 하고 외출 시에는 옷을 따뜻하게 입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 이제 천만 관객 능력을 가진 우리 영화에서도, 톰 행크스나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김명민이나 안성기 같은 명배우가 사실적 전립선 연기를 펼치는 영화가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이화의대 목동병원 비뇨기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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