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경계선에 이어 '방공식별구역'으로 명명된 하늘 선 획정을 둘러싸고 한국, 중국, 일본 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중국 정부가 23일 발표한 방공식별구역에 우리나라가 점유하는 이어도 상공이 포함된 것으로 확인되면서 한중일 3국이 영공 주권을 놓고 물고 물리는 신경전을 벌이게 됐다.
중국이 선언한 방공식별구역은 제주도 서남쪽 상공에서 우리 군의 방공식별구역(KADIZ)과 일부 겹친다. 폭 20㎞, 길이 115㎞ 정도로 제주도(1,848㎢)보다 조금 작은 1,766㎢ 면적이다. 센카쿠(尖閣)열도와 오키나와(沖繩) 등 핵심 영토가 중국의 방공식별구역에 들어가는 일본에 비해서는 미미한 수준이다.
문제는 이 구역에 이어도가 포함돼 있다는 사실이다. 엄밀히 말해 이어도는 수중암초여서 영토 개념은 아니지만 우리가 관할권을 행사한다. 해양과학기지가 설치돼 있고, 실제 해상 작전구역(AO)에도 들어갈 만큼 전략적 중요성이 큰 곳이다.
중국의 국제정치ㆍ경제적 약진과 미국의 상대적 약화가 맞물려 동북아 안보지형이 불안정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 지역에서 중국과 일본의 무력충돌 가능성이 생겼다는 데 우리 정부의 우려가 있다. 군 관계자는 "우리 관할 지역 하늘에서 중국과 일본의 전투기가 버젓이 충돌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라고 말했다.
우리 정부가 중국의 방공식별구역을 인정하면 중국에도 비행을 허락 받아야 하는 상황이 닥치고 중국이 혹여 서해까지 식별 라인을 확장할 경우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청와대가 긴급외교안보장관회의를 열어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설정을 인정할 수 없고 중국측과 협의를 하겠다는 입장을 세운 것도 상황악화를 사전 차단하기 위한 포석이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중일의 움직임을 심각한 주권침해로 여기는 국내여론으로 인해 우리 정부도 KADIZ 재설정에 나서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보여 동북아 3국의 갈등이 거세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미 한중일은 해양경계선인 대륙붕 한계(경계)를 놓고도 치열한 기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정부는 지난 8월 유엔 대륙붕한계위원회(CLCS)와 동중국해 대륙붕 한계 정식정보에 관한 설명회를 가졌다. 지난해 12월 CLCS에 제출한 문서를 통해 "한국의 대륙붕 한계선은 일본 오키나와 해구까지 뻗어 있다"는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이는 정부가 2009년 예비 정보문서를 통해 밝힌 한계보다 최대 125㎞ 일본쪽으로 더 들어간 것으로 두 배 이상 넓어진 면적이다.
중국 역시 지난해 자국 대륙붕이 오키나와 해구까지 확장돼 있다는 내용의 한계 정보를 CLCS에 냈는데, 한국이 선언한 구역과 상당 부분 중첩된다. 반면 일본은 동중국해 해저에 대륙붕이 형성돼 있지 않지만, 한중의 공세적 해양영토 확장 시도에 배타적경제수역(EEZ)과 같은 200해리까지를 자국 대륙붕이라 주장하며 이 영역을 넘는 한중의 한계정보는 무효라고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대륙붕 경계심사도 당사국이 이의를 제기하면 심사 자체를 진행하지 않고, 설령 심사를 하더라도 법적 구속력이 없어 최종 경계 획정은 관련국간 협상으로 해결해야 한다. 정부 당국자는 "어차피 대륙붕 경계나 방공식별구역이나 법적 절차로 해결하기 어려운 사안인 만큼 향후 협상에 대비한 외교적 해법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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