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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11월 25일] KT와 포스코, 한 번만 꾹 참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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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11월 25일] KT와 포스코, 한 번만 꾹 참으면 된다

입력
2013.11.24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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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당연하게 여기지만 중앙은행(한국은행) 총재의 임기가 보장되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 전이 아니다. 1997년 말 한은법 개정으로 중앙은행의 법적 독립성이 확보되면서부터다. 이전에도 4년을 채운 총재는 있었지만, 그저 임기를 '마친 것'이지 '보장받은 것'은 아니었다. 제대로 임기를 보호받은 총재는 최근 4명(전철환, 박승, 이성태, 김중수)뿐이다.

전임 이성태 총재 때 큰 고비가 있었다. 이전 전철환ㆍ박승 총재는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쳤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었지만 이 총재는 재임 중 여야 정권이 바뀐 터라 임기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사실 MB정부는 이 총재의 경질을 심각하게 고려했다. '노정부 사람'인 것도 못마땅한데 업무스타일까지 깐깐하고 비협조적이었으니 더욱 달가울 리 없었다. 정권실세들 사이에선 이미 '같이 일하기 힘든 사람'으로 낙인 찍혀 있었다.

만약 리먼 사태가 아니었다면 이 총재는 교체됐을지도 모른다. MB정부가 그에게 금융위기 수습책임을 계속 맡긴 건, 내켜서가 아니라 전쟁 중 장수를 바꿀 수 없어서였다. 하지만 과정이 어떻든 이 총재는 결국 자신을 임명하지 않는 정부와 2년을 함께 했고, 여야 정권교체 후에도 임기를 마친 최초의 한은 총재로 남게 됐다.

나는 MB정부의 몇 안 되는 잘한 일 중의 하나로, 이 케이스를 꼽고 싶다. 사실 권력이 맘만 먹는다면 한은 총재쯤은 몇 번이라도 바꿀 수 있다. 경질 사유야 그럴 듯 하게 만들면 되고, 비판여론은 잠시 견디면 그만이다. 하지만 MB정부는 꾹 참았고 안 바꿨든 못 바꿨든, 결과적으로 '정권이 교체되어도 한은 총재는 남는다'는 좋은 선례를 남기게 됐다. 아마 그때 이 총재를 낙마시켰다면 임기보장 불문율은 사라져, 박근혜 정부 하에서 현 김중수 총재의 거취도 어찌되었을지 모를 일이다.

공기업인지 민간기업인지 이젠 정체성조차 헷갈리는 두 거대기업, KT와 포스코가 지금 새 CEO를 찾고 있다. 전혀 다른 성격의 자리임에도 한은총재 스토리를 자세히 얘기한 건, 정부가 '한번만 꾹 참으면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이석채 KT회장과 정준양 포스코 회장의 중도하차를 둘러싼 잡음은 새삼 따질 것도 없다. 다 끝난 일이고, 중요한 건 이제부터다. 아마도 정부는 지금 두 공석에 자기 사람을 앉히고 싶은 강렬한 욕구를 느끼고 있을 것이다. 하기야 KT와 포스코 회장 정도라면 그런 유혹을 받을 만도 하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순간, 5년 뒤 또다시 이 푸닥거리를 해야 하는 것 또한 자명하다.

정부가 한번만 꾹 참았으면 한다. 불개입 정도가 아니라, KT와 포스코 쪽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으면 한다. 이번에 '보이지 않는 손'이 배제된다면, 5년 후 어떤 욕심 많은 정부가 오더라도 멋대로 하지는 못할 테고, 두 회사의 인사 자율은 서서히 관행과 합의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MB정부의 자제가 한은총재 임기보장 구현에 기여했듯, 현 정부의 절제가 KT와 포스코의 실질적 민영화를 완성시킬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래도 정부가 끝내 충동을 억제하지 못한다면, 마지막으로 믿을 건 사외이사들뿐이다. CEO선임권한을 가진 만큼, 의지만 있다면 외풍을 충분히 막을 수 있다. 5년 주기의 이 악순환을 이제 누군가는 끝내야 하는데, 정말로 사외이사들의 역할이 중요한 시기다. 직을 걸고서라도 그 일을 해줬으면 한다.

무거운 사명을 지닌 두 회사 사외이사들의 면면은 아래와 같다. KT는 김응한 미시간대 석좌교수, 이춘호 교육방송이사장, 이현락 세종대 석좌교수, 박병원 전국은행연합회장, 성극제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 차상균 서울대 교수, 송도균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포스코는 이영선 전 한림대 총장, 한준호 삼천리 회장, 이창희 서울대 교수, 제임스 비모스키 두산 부회장, 신재철 전 LG CNS 사장, 이명우 한양대 특임교수이다.

이성철산업부장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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