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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만 휜… 플렉서블 스마트폰 아직은 '미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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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만 휜… 플렉서블 스마트폰 아직은 '미완'

입력
2013.11.24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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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굽혔다. 누가 더 화려한지, 누가 더 재능이 많은지 겨루는 데만 정신 파는 통에 도도하고 빳빳하기만 했던 녀석들이 질세라 너도나도 몸을 구부리기 시작했다. 굽힌다 굽힌다 했는데 도대체 언제 진짜 굽히나 하고 오매불망 기다렸던 사람들은 이 녀석들이 선보인 참신한 자태에 환호로 답했다.

하지만 알고 보면 아직 완전히 굽힌 게 아니다. 속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아직 빳빳한 알맹이들이 행여나 보일세라 숨어 있다. 그래도 녀석들이 몸을 속속들이 다 구부리기까지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다고들 한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자태를 머지않아 감상하게 될 듯하다. 요 녀석들, 스마트폰 말이다.

유리 대체할 소재 나와야

화면이 매끈하고 부드럽게 휘어진 스마트폰이 최근 잇따라 선보이면서 '플렉서블 디스플레이'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그런데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휘어진 스마트폰은 엄밀히 말해 진짜 '플렉서블'이 아니다. 플렉서블은 말 그대로 자유롭게 말았다 폈다 구부렸다 폈다 비틀었다 폈다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요즘 나온 휘어진 스마트폰은 대부분 그냥 살짝 구부러진 채로 있다. '플렉서블(flexible)'이라기보다 '커브드(curved)'인 것이다.

스마트폰을 완전한 플렉서블로 만드는 데 가장 큰 걸림돌로 전극이 꼽힌다. 스마트폰에서 사진을 보고 문자를 찍는 화면 아래에는 전극이 깔려 있다. 이 전극은 내부에서 오는 전기나 빛 신호를 받아 사용자가 알아볼 수 있도록 글자와 그림 등을 표시하는 곳이라 전기가 통하면서도 투명한 물질로 만들어야 한다. 이런 물질이 바로 인듐주석산화물(ITO)이다. 투명하고 단단한 유리라고 생각하면 된다. 대부분의 스마트폰 전극이 ITO로 만들어진다.

ITO가 유리와 비슷하기 때문에 ITO 전극을 쓴 스마트폰을 굽혔다 폈다 반복하다 보면 깨질 수밖에 없다. 스마트폰의 다른 부분을 모두 휘고 구부러질 수 있는 플라스틱으로 만든다 해도 전극을 바꾸지 못하면 진정한 의미의 플렉서블 디스플레이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다른 획기적인 물질이 필요하다.

ITO를 대체할 만한 최적의 물질로 최근 들어 그래핀이 거론되고 있다. 탄소(C)가 벌집처럼 이어져 있는 구조로 투명하고 유연하면서도 전기가 잘 통한다. 하지만 그래핀으로 디스플레이용 전극을 만들려면 온도를 1,000도 가까이 올려야 하고, 별도 공정도 필요하다. 상대적으로 낮은 온도에서 상용 전극 제조가 가능한 ITO에 비해 아직 실용성이 떨어진다.

굽은 판 위에서 데이터 저장돼야

완전한 플렉서블 스마트폰 개발이 어려운 이유로 메모리도 빼놓을 수 없다. 메모리는 데이터를 저장하고 재생하는 데 필요한 핵심 부품이다. 스마트폰을 작동시키는 주요 부품 가운데 플렉서블하게 만들기가 특히 까다롭다. 예를 들어 배터리는 내부 구조가 간단하고 내용물도 단순한 액체나 가루 형태이기 때문에 틀만 플라스틱으로 바꾸면 된다. 하지만 휘어질 수 있는 기반 위에서 데이터를 저장, 재생, 삭제할 수 있도록 전류를 정확히 조절할 수 있어야 하는 메모리는 그리 간단치가 않다.

현재 쓰이는 스마트폰 메모리는 간단히 말해 단단한 실리콘 기판 위에 미세한 전기회로를 만들어놓은 것이다. 휘어진 스마트폰 안에도 대부분 이런 실리콘 메모리가 들어 있다. 메모리 크기가 작고 화면이 휘어진 정도가 심하지 않기 때문에 들어갈 수 있다. 메모리 자체를 휘게 하려면 기판의 소재를 아예 탄소 유기물로 바꿔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유기물 기판 위에서 원하는 패턴의 전기회로를 정확히 구현해내기가 쉽지 않았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전북분원 복합소재기술연구소 소프트혁신소재연구센터와 광주과학기술원(GIST) 신소재공학과 공동연구팀이 바로 이 문제를 최근 해결했다. "기판이 휘어지는 상황에서도 데이터 구동이 정확히 이뤄질 수 있도록 전류 방향을 조절할 수 있는 기술을 적용해 64비트의 저장 능력을 갖고 전원이 끊어져도 저장 능력이 사라지지 않는 유기물 메모리를 개발했다"고 연구팀은 밝혔다. 상용화하면 메모리까지 모두 휘어지는 진짜 플렉서블 스마트폰 개발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연구팀은 기대하고 있다.

굽혔다 폈다를 계속 반복할 경우 스마트폰 기기 자체의 수명이 줄어들 수 있는 문제 역시 플렉서블 디스플레이 현실화의 또 다른 걸림돌이다. 플라스틱 두 장을 단단히 붙인 채 여러 번 굽혔다 폈다 하면 점점 간격이 벌어지면서 떨어지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대량생산을 하면서도 이 같은 불량 제품이 없어야 한다.

플렉서블을 넘어서

아직 초기 단계임에도 불구하고 플렉서블 전자제품에 대한 기대는 관련 기술의 패러다임을 바꿔놓고 있다. 전자기판 하면 안정적인 실리콘 재질이 당연하던 시절을 지나 이제 유연한 유기물 재질이 각광받는 추세다. 전자제품이 플렉서블하기 위해서는 처음엔 디스플레이(화면)만 휘어질 수 있으면 그만이라고 여겼지만, 이제는 배터리와 메모리까지 모두 구부리는 기술을 누가 먼저 상용화하느냐를 놓고 경쟁이 치열하다.

디스플레이 소재의 대세도 뚜렷해졌다. 현재 시판되고 있는 커브드 스마트폰의 디스플레이 소재는 대부분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다. 유기물로 이뤄져 있어 잘 휘어지고, 스스로 빛을 내기 때문에 별도의 광원이 필요 없으며, 공정 비용도 기존의 발광다이오드(LED)에 비해 싸다. LED는 우수한 광원이지만 기판이 사파이어라 비싼 게 흠이며, 액정디스플레이(LCD)는 자체 발광이 안 되고 구부리기 어렵다. 휴대전화가 나오기 한참 전에 개발된 브라운관(CRT)이나 플라스마 디스플레이 패널(PDP)은 언감생심 구부릴 생각도 못 하니 갈수록 더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 '아이언맨 2', '미션 임파서블 4', '아바타'. 이들 영화에는 공통적으로 첨단 디스플레이 기술이 등장한다. 빈 허공에 손을 움직여 데이터를 만들면 그 화면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장면, 투명한 판에 보이는 디스플레이를 손으로 늘였다 줄였다 하는 장면 등을 보면 아직은 그냥 영화 같다. 영화를 현실로 바꾸는 것, 디스플레이 과학자들의 목표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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