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컴컴한 골목길을 혼자 걷고 있다. 어느 집 대문 앞에서 30대 여성이 대여섯 살쯤 된 사내아이를 심하게 때리고 있다. 아이가 "엄마 잘못했어요"라고 울먹여도 매질하는 손길은 멈추지 않는다. 당신과 눈이 마주친 여성은 "가정교육 중이니 상관하지 말라"고 쏘아붙인다. 당신은 경찰에 신고하겠는가, 아니면 조용히 집으로 들어가겠는가.
한국일보가 지난달 23일부터 20일간 인터넷 여론조사 서베이몽키를 통해 던진 이 질문에 시민 464명 중 129명(27.8%)은 "모른 척 지나가겠다"고 답했다. 형제 또는 자매 간 폭행이 벌어지는 상황에서도 "모른 척한다"는 응답이 각각 161명(34.7%), 170명(36.6%)으로 자녀를 때리는 경우보다 조금 높다. 반면 소매치기와 주먹다툼하는 상황을 가정한 질문에는 "모른 척한다"는 응답이 5.4%(25명)로 이보다 크게 낮다. 유독 가정폭력에 대해서는 끼어들지 않겠다는 이들이 10명 중 3명 꼴로 많은 것이다.
이는 가정폭력을 '범죄'가 아닌 '남의 집 일'이라고 생각하는 우리 사회의 인식을 그대로 투영한다. 아이에 대한 엄마의 폭력을 모른 척하겠다는 이유로 129명 중 62%(80명)가 "끼어들 권한이 없다고 생각해서"라고 말했다. 20.2%(26명)는 "바쁘거나 귀찮아서"였고, "문제라고 보지 않는다"는 대답도 11.6%(15명)나 됐다. 반면 소매치기와 싸우는 상황에 끼어들지 않겠다고 답한 이들은 40%가 "보복이 두려워서"였다.
현실은 이보다 심각하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현실에서 제3자가 가정폭력을 신고하는 비율은 응답보다 훨씬 낮을 것"이라고 말했다. 행동이 말을 못 따르는 일반적 경향은 차치하고, 실제로 가정폭력은 거의 보이지 않는 집 안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걸어 잠근 현관문 안쪽에선 피할 곳도, 말리는 사람도 없다. 문틈으로 때리는 소리가 새 나온다고 해서 이웃이 초인종을 눌러 말리거나 112 다이얼을 누르는 일은 극히 드물다.
하지만 가정폭력이야말로 그 어떤 범죄보다 제3자의 관심과 신고가 절실하다. 피해자들은 스스로 신고할 수 없는 어린이 등 미약자가 대부분이고, 폭력을 피하려다 더 큰 보복을 당하는 탓이다. 몸에 남은 상처가 뜻하는 것을 주변에서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 안방의 피해자들은 반복되는 폭력과 학대에 시달리다 슬픈 결말을 맞는다. 계모에게 맞아 죽은 8세 소녀, 소금이 씹히는 밥을 억지로 먹고 나트륨중독으로 숨진 10세 초등학생이 그랬다. 이런 가정폭력의 희생자가 바로 당신 곁에도 있는지 모른다. 지금 벽 너머 비명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김창훈기자 chkim@hk.co.kr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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