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싸움 같은데…." 지난해 4월 경기 수원시에서 오원춘(43)에게 무참히 살해당한 20대 여성의 신고 전화에 112상황실 경찰의 반응이었다. 가정폭력을 엄중하게 사법처리해야 할 경찰조차 얼마나 둔감한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부부싸움이라면 나설 필요가 없다는 안일한 공권력은 폭력을 방조하고 피해를 키운다.
지난해 6월 수원에서 발생한 폭행사건이 그렇다. 동거인의 폭행을 견디다 못해 피해여성이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은 신고자 집에 확인 전화를 걸어 가해자로부터 "신고한 사실이 없다"는 말만 듣고 출동하지 않았다. 그 뒤 피해자는 가해자의 보복 폭행으로 갈비뼈 2개가 부러졌다. 시민단체는 해당 경찰을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했으나 검찰은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불기소처분을 내렸다.
5월 경찰청이 전국의 지역경찰관(지구대 및 파출소 근무자) 8,932명과 가정폭력 담당 수사관 933명을 대상으로 가정폭력 인식조사를 실시하자 57.9%가 '가정폭력 사건은 가정 내 해결이 우선'이라고 답했다. '경찰이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응답도 35%였다.
3년 전보다 나아진 게 이 정도다. 2010년 여성가족부가 지역경찰관 89명과 형사 90명을 선정해 실시한 실태조사에서는 71.6%가 '가정 내 해결이 우선'이라고 답했다. 심지어 '피해자인 여성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도 71.1%나 됐다.
경찰부터 가정폭력을 범죄로 보지 않다 보니 구속이나 기소로 이어지는 일도 극히 드물다.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검거한 가정폭력사범 5만245명 가운데 구속자는 0.7%인 348명에 불과했다. 그나마 올해는 4대 사회악 척결에 포함돼 9월까지 전년 동기보다 2배 가까이 많은 1만3,795명이 검거됐고, 구속률도 1.6%로 올랐다.
경찰이 수사해서 송치했지만 검찰이 불기소한 비율도 60%나 된다. 인재근 민주당 의원이 대검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송치된 3,154명 중 2,006명(63.6%)이 불기소 처분됐다.
수사기관까지 간 것이 극히 일부인 점을 감안하면 대다수의 피해자는 제도적 도움을 못 받고 버려진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경기도의 경우 지난해 가정폭력 피해상담 2만5,434건 중 수사ㆍ법적 지원이 2,167건, 보호시설 입소 연계가 587건, 의료지원이 321건이었고, 가장 많은 1만9,115건은 가해자에게 별도 조치가 없는 심리정서적 지원이었다.
그 사이 피해자들은 자신 또는 가해자의 죽음을 통해서야 비로소 폭력에서 벗어나는 파국적 결말을 맞곤 한다. 김재엽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가 가정폭력을 아직도 완전한 범죄로 인식하지 않고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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