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 안은 술렁였다. 설렘과 기대와 아쉬움이 젊은 혈기와 함께 실내를 맴돌았다. 각각 상영시간 10분 가량의 단편영화 두 편이 스크린에 점멸한 뒤 박수와 환호성이 터졌다. 2주 동안 공들여온 빛과 소리의 결과물을 마주한 학생들의 얼굴은 웃음으로 빛났다. 14개국 28명의 다국적 학생들이 빚어낸 하모니가 첫 선을 보이는 순간이었다.
지난 11~24일 태국 남부 휴양 도시 후아힌에서 열린 '2013 한-아세안 차세대 영화 인재 육성 사업'(FLY 2013)은 아시아 영화의 미래를 미리 엿보는 자리였다. 한국과 일본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14개국에서 모인 학생들은 영화로 하나가 되는 아시아의 모습을 보여줬다.
FLY는 부산영상위원회(위원장 오석근) 주도로 지난해 '개교'한 일종의 초단기 국제영화학교다. 상대적으로 영화 약소국으로 꼽히는 아세안 회원국 영화 영재들을 위해 마련된 교육 프로그램인데 한-아세안 협력기금의 지원(27만5,000 달러)을 받는다. 지난해 태국과 미얀마 베트남 등 아세안 10개국의 영상위원회 등이 각각 2명씩 선발한 학생 20명, 부산영상위원회가 추천한 학생 2명이 참여해 필리핀에서 첫 강의와 실습을 했다. 올해는 대만 요르단 일본 학생이 합류하며 14개국 28명으로 덩치를 키웠다.
FLY는 아세안 국가를 순회하며 개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편집과 사운드 작업을 위한 장비들은 부산에서 공수해왔다. 강사진은 영어가 가능한 다국적 영화인으로 꾸려졌다. 충무로의 명장 배창호 감독과 태국의 떠오르는 예술영화 감독 아딧야 아사랏이 14명씩 두 팀으로 나뉜 학생들의 연출 지도를 각각 맡았다.
피부색과 언어만큼 학생들의 배경도 다양했다. 인도네시아의 17세 대학생 카린 파리넬라에서부터 브루나이에서 온 34세 방송 프로듀서 노하야니 빈티 카마스까지 다양한 경력과 연령의 학생들이 함께 수학했다.
교육의 최종 목표는 팀 별 단편영화 완성. 지난 9월부터 한 달 가량 온라인으로 시나리오 초고 작업에 돌입한 학생들은 10월 부산국제영화제 때 부산에서 만나 시나리오를 다듬고 제작을 준비했다. 다시 한 달 남짓 온라인 회의를 거쳐 지난 11일 태국에 도착한 학생들은 본격적인 영화 제작에 들어갔다. 오디션을 통해 자신들의 시나리오에 맞는 배우들을 찾는 한편 촬영 장소도 물색했다. 3일 동안 촬영을 한 뒤 5일 동안 편집 등 후반 작업을 해 영화를 완성했다. 배창호 감독은 "국적과 언어는 달라도 하나의 이야기에 집중하니 쉬 공감대가 형성되는 듯하다. 벌써 프로가 다 된 듯하다"고 말했다.
여러 나라에서 온 학생들이 두 팀으로 나뉜 만큼 경쟁 의식이 만만치 않았다. 팀별로 우수 학생 한 명씩을 뽑아 단편영화 제작 지원금 명목의 장학금 5000달러도 주니 경쟁은 더욱 뜨거울 수밖에. 23일 저녁 사운드 작업실을 찾았을 때 작업 막바지임에도 학생들은 열의를 잃지 않았다. 10여명이 커피로 피로를 잠재우며 사운드 작업에 몰입했다.
14일간의 영화학교 생활을 통해 학생들은 영화만을 배우진 않은 듯했다. 피터 바르솔라소 에두리아 3세(필리핀ㆍ24)는 "자본주의 국가에서 온 내가 공산주의 국가(라오스)에서 온 학생과 영화로 서로 소통할 수 있었다. 아시아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24일 오후 졸업식에서 배창호 감독은 말했다. "모국에 돌아가면 사람들에게 쓸모 있는 무언가를 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이번 교육 기간에 들인 모든 노력은 아무 소용이 없어집니다." 박수로 화답하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아시아 영화 인재들이 걸어갈 길이 가늠됐다.
후아힌(태국)=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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