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진출 48년 만에 쾌거, 철판 위 골재 구워 고속도로 포장공사 공기 내 완료 등 말 못할 사연도, “신시장 개척하고 신성장 동력 구축해 미래 불확실성 대비”
현대건설이 해외진출 48년 만에 통산 해외 수주액 1,000억달러를 돌파했다. 1965년 첫 해외시장 진출부터 현대건설의 족적은 한국 건설사(史)와 따로 떼어내기 힘들다.
현대건설은 22일 중남미에서 14억달러 정유공장을 수주해 회사설립 후 통산 해외 수주 누적액이 1,010억527만달러(107조원)를 기록했다고 24일 밝혔다. 국내 건설사로는 처음으로 해외 수주액 1,000억달러 돌파이자 국내기업들의 총 해외 수주액 5,970억달러의 17%를 차지한다. 2위인 대우건설(485억달러)과는 2배 이상 차이가 난다. 현대건설은 2010년과 지난해 연 100억달러가 넘는 해외 수주를 기록 ‘연 수주 100억달러’ 시대를 열었다.
시작은 미약했다. 첫 해외 수주는 65년 태국 ‘파타니 나라티왓 고속도로 공사’로 수주액은 540만달러에 불과했다. 이후 베트남과 호주, 파푸아뉴기니 등에 진출하면서 연간 수주고가 수억달러 규모로 늘어나며 당시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선두주자 역할을 맡았다. 75년에는 바레인에서 아랍수리조선소 공사를 따 내면서 중동 진출의 닻을 올렸다. 특히 76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20세기 최대 역사(役事)’로 불리는 9억3,000만달러 규모의 주베일산업항 공사를 수주하며 ‘중동 신화’를 탄생시켰다. 수주 금액은 당시 우리나라 정부 예산의 4분의 1이었고 선수금 2억달러는 한국은행 외환보유액(2,000만달러)의 10배였다.
수주가 성장하는 만큼 기술력도 빠르게 발전했다. 85년 완공 당시 세계에서 세 번째로 긴 말레이시아 페낭대교와 화재로 훼손된 배출가스 연소탑을 100일만에 재설치하겠다는 약속을 지킨 수주 당시 최대 규모인 이란 사우스파 가스처리시설(26억달러) 공사는 탁월한 시공 능력을 보여 준 사례다.
1,000억달러 돌파는 수많은 난관을 포기하지 않는 도전정신으로 극복한 결과이기도 하다. 태국 파타니 나라티왓 고속도로 공사 때 골재가 비에 젖으면서 도로 포장재인 아스콘 생산이 어려워 공사가 지연됐다. 이때 현장을 방문한 고(故) 정주영 당시 현대건설 사장이 “철판 위에서 골재를 구워 물기를 없애라”고 지시한 후 아스콘 생산이 정상적으로 이뤄져 겨우 공기에 맞출 수 있었다. 공사는 적자였지만 대한민국 경제의 근간을 이룬 경부고속도로 공사의 밑거름이 됐다. 아랍수리조선소 공사 중에는 중동 특유의 물 부족으로 콜라로 양치질을 하기도 했다.
83년 이라크 바그다드 의료단지 공사는 까다로운 여성 감독관의 현장 감리 때문에 공사 진행이 더뎠다. 당시 정수현 차장(현 사장)은 성실하게 지적 사항을 보완하는 한편 당시 이란ㆍ이라크 전쟁이 한창이라 이라크에 생필품이 부족하다는 걸 파악해 스타킹 등을 구해 감독관에게 선물하는 등 정성을 쏟아 감독관을 감동시켜 공기를 지킬 수 있었다.
48년 만에 현대건설은 한국의 경제기적을 이끈 대표 건설사로 자리매김했지만,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 때문에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국내 건설시장의 침체뿐 아니라 해외에서는 중동과 아시아(86%)에 과도하게 집중된 수주를 다변화하고, 양적 성장을 넘어 고부가가치 수주를 위해 선진국 업체와 본격적인 경쟁을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태석 현대건설 상무는 “중남미와 아프리카 시장을 적극적으로 개척하고 원자력발전소 등 신성장 동력을 구축해 수익 개선과 다각화를 이뤄낼 것”이라고 말했다.
배성재기자 passio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