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런던무역관 김성주씨는 영국 소비자정보지 '위치(WHICH?)'를 5년째 정기구독하고 있다. 영국 '소비자연합(Consumers' Association)이 발행하는 이 정보지의 구독료는 월 9.85파운드(약 1만6,000원). 부임 초기 생필품 하나 사면서도 뭐가 좋은지 몰라 헤맬 때부터 지금까지 위치는 좋은 소비 길잡이였다. 그는 "위치는 냉장고의 평균 수명과 에너지 비용, 프린트의 소모품 비용 등 '숨은 비용'정보까지 알려준다"고 말했다.
# KOTRA 호주 시드니무역관 그레이엄 워싱턴(Graham Worthington)씨 역시 현지 소비정보지 '초이스(CHOICE)'팬이다. "비영리 민간조직 '초이스'가 발행하는 잡지의 제품 정보는 믿을 만하다." 초이스는 일체의 기업 광고를 안 받으면서 과장광고 기업을 선정해 '불명예 상(Shonky Award)'을 주고, 품질이 아니라 로비로 성장하려는 기업을 고발하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한다.
미국의 '컨슈머리포트(Consumer Reports)', 프랑스의 '6,000만 소비자(60 Millions de Consommateurs)', 독일의 '테스트(Test)' 등도 소비자의 신뢰를 얻고 있는 대표 소비 정보지들이다. 대부분 독자의 구독료를 재원으로 비영리단체가 독립적으로 발행한다. 여정성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소비자주권은 화폐를 투표처럼 행사해 시장에 영향을 미친다"며 "정확하고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는 소비 정보지는 공정한 시장의 전제 조건이다"라고 말했다.
스티브잡스를 움직인 컨슈머리포트
"Not Recommended(추천 불가)" 컨슈머리포트는 2010년 6월 갓 출시된 애플 아이폰4를 이렇게 평가했다. "기계 결함으로 수신 불량 문제가 있으니 차라리 아이폰3GS를 사시오."발표 다음날 애플 주가는 4%가량 곤두박질쳤고, 스티브 잡스는 휴가를 중단하고 뉴욕 본사로 되돌아왔다. 직후 잡스는 수신불량 문제를 해소해줄 범퍼케이스를 무상으로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뉴욕에 본부를 둔 비영리 단체 '소비자협회(Consumer Union)'가 매월 발행하는 컨슈머리포트의 정기 구독자는 약 730만 명(2010년 기준). 연 26달러(약 2만7,000원)를 내는 온라인 회원이 410만 명, 45달러(약 4만7,000원)를 내는 잡지 구독자도 약 320만 명이다. 2010년 매출은 2억4,300만 달러(약 2,673억). 직원 652명이 50개 연구시설에서 제품을 시험하고 잡지를 발행한다.
컨슈머리포트의 '3불(不) 원칙'은 확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은 기업 광고는 일절 안 받고, 기업이 평가 결과를 광고에 이용하는 것도 금지하며, 시험 대상 제품은 전량 직접 구입한다.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 김일광 산업분석팀장은 "안정적 재정을 기반으로 매출의 90%를 제품 검사에 투입해 '소비자에 의한, 소비자를 위한'잡지라는 인식을 시장에 단단히 심어놓는 데 성공한 잡지"라고 평가했다.
소비자의 관심사를 반영해 평가 대상 제품 선정하고 대상 품목의 모든 모델과 서비스를 전수조사하는 게 컨슈머리포터의 방식. 11월호 컨슈머리포터에는 미국 내 997개 건강보험상품의 품질이 조사 결과가 실렸다. 이제 미국 시민들은 예방검진 만성질환 골다공증 관리 등 항목에서 114개의 추천 상품과 402개의 보통 상품, 481개의 비추천 상품을 알게 됐다. 지난 7월에는 미 정부 보건데이터를 분석해 2,463개 병원의 수술 능력과 수술 후 관리 수준을 조사해 하버드대 유관병원을 하위권으로, 존스홉킨스병원을 평균 수준으로, 소형 병원을 상위권으로 평가해 충격을 주기도 했다. 기업에게 컨슈머리포터는 천국과 지옥의 심판관이라 해도 과장이 아니다. 때로는 피고석에 정부 기관이 세워지기도 한다.
소비자 주권을 대변하다
"월드컵 경기장이 위험하다." 2006년 1월 독일 월드컵이 열리기 5개월 전 '테스트'의 발표는 온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12개 경기장 중 4곳이 긴급 상황 시 관중 대피에 결함이(Clear Deficiencies) 있는 '위험한 경기장'으로 판명했기 때문이다. 해외 언론까지 비상한 관심을 끌게 됐고, 독일 월드컵조직위원회는 조사 오류 가능성을 제기하며 무마에 나섰지만 독일정부는 경기장 재점검에 나섰다. KOTRA 베를린무역관 강환국씨는 "안 좋은 평가를 받은 기업이나 기관이 소송을 제기하거나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50년 동안 흔들림 없는 소신으로 일관하면서 소비자 신뢰를 얻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비 정보지는 당장에는 제품 정보를 제공하지만 직접 사회 변화를 이끌기도 한다. 2012년 4월 영국 '위치'는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벌이던 소금ㆍ설탕 사용자제 홍보의 기만성을 폭로하며 식품업계의 각성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전개, 영국 정부로 하여금 유럽연합(EU)에 관련 법을 상정토록 하기도 했다.
이들 소비자단체는 1990년 다국적 기업 횡포에 맞서 국제 소비자 연구시험기구ICRT(International Consumer Research and Testing)를 출범시켰다. ICRT에는 현재 전세계 43개 소비자단체가 참가해 특정 사효?대해 공동 대응, 조사 경비를 절약하고 정보와 활동 노하우를 공유한다. 한국의 소비자시민모임(회장 김자혜)도 이사단체로 참가하고 있다.
정지용 기자 cdragon26@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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