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교육부가 주최하는 독서교육 실천 현장포럼을 다녀왔다. 많은 선생님들이 열심히 참여해서 알찬 주제 강연을 나눴고 서로 만족했다. 강연 말미에 이런 말을 했다. 여러 선생님들 가운데 어떤 분들은 교총에 소속되고 또 어떤 분들은 전교조에 속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사는 그 소속 집단과 무관하게 똑같이 교육에 대한 열정과 사명감으로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점에서 동지이고 동료이다. 그런데 이번 전교조 법외 노조 문제에 대해 교총에서 아무런 반박 성명을 발표하지 않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아무리 정부의 눈에 전교조가 눈엣가시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해직자의 조합원 인정 여부를 노조 내부에서 결정하는 것은 너무나 명백한 국제적 상식이다. 세계교원단체총연맹에는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과 전국교직원노조(전교조)가 함께 가입되어 있다. 그런데 세계 172개 회원 국가 중에서 정부에 의해 교원노조가 법 밖으로 밀려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란다. 그리고 그 일로 국제적으로 망신을 사고 있다. 오죽하면 세계교총연맹 회장이 한국을 직접 방문해 항의하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유엔 정신을 충분히 설명해줘야 할 것 같다"는 말을 했을까. 그런데도 모르쇠다.
나는 이 문제가 처음 불거졌을 때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좋은 기회라 여겼다. 적어도 그 결정이 위헌적이며 초법적이고 비상식적이라는 점에서 보수 진보를 떠나 진리를 가르치는 교사의 입장에서 교총은 항의성명을 발표할 줄 알았다. 설령 속으로나 심정적으로는 대척점에 있더라도 옳고 그름은 분별할 수 있으며 그런 상황에 대해 소속을 떠나 동료 교사로서 옹호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런 상황이 만약 반대로 벌어졌다면 나는 전교조에 대해서도 같은 요구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런 성명도 없었다. 아까운 기회를 놓쳤다!
선거 때는 국민대통합을 외치던 자들이 권력을 잡자 패를 가르고 제 편만 노골적으로 챙기는 거야 그렇다 치자. 그런데 그 와중에 시대를 역행하는 결정을, 그것도 고용노동부와 교육부가 앞장서서 내렸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만약 이 문제에 대해 교총에서 항의성명을 발표했다면 전교조와 교총이 서로 화해하고 협력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서로 반목하고 배척만 하는 세태에서 그런 대승적이고 도량 있는 선언을 했더라면 선생님들은 역시 다르다는 존경심을 절로 갖게 되었을 것이고, 그것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진 독버섯인 반목과 갈등을 이겨내는 좋은 본보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기회를 놓친 것이다. 그야말로 일부러 만들고 싶어도 만들 수 없는 천우신조의 기회를 발로 차버린 것이 아닌가!
누구나 생각이 다르고 신념이 다르며 판단과 가치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민주주의는 그 다름을 인정하고 차이를 받아들이면서 그것을 해소할 수 있는 소통과 설득의 과정을 겪는 데에서 꽃 피운다. 그게 교육의 핵심이기도 하다. "조합원이기 이전에 교사"라는 정부의 인식도 옹졸하기 짝이 없다. 그 동안 묵인했고 사문화했던 규정을 꺼내 칼을 휘두른 것이 과연 당당한 일일까? 이런 상황에서 교총이 이 문제의 잘못을 지적하지 않고 전교조 법외 노조 결정을 모른 척한 것은 아쉬운 일이다. 그날 그곳에 모였던 선생님들도 그제야 그 문제의 본질과 심각성을 새삼 깨우친 눈치였다. 그리고 소속 여부를 떠나 대다수의 선생님들이 그 기회를 놓친 것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보수냐 진보냐 입장 차이를 떠나 옳음과 그름, 정의와 불의, 민주주의와 반민주주의의 명백한 대립과 갈등 해소는 반드시 해결해내야 하는 절대적 가치이다. 거기에 무슨 집단의 이익이 필요한가. 하물며 교육 집단에서야 말할 것도 없다. 이 일을 반면교사로 삼아 같은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다면 소 잃고 그래도 외양간은 고칠 수 있을 것이다. 그게 바로 산교육이다. 그래서 두고두고 아깝다!
김경집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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