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가 예능 프로그램 '일밤'에 내보내기 위해 최근 경기 평택 천안함 제2함대 사령부에서 녹화한 소설가 이외수씨의 강연을 방송하지 않기로 22일 결정했다. 여당 의원이 천안함 폭침 사건 당시 이씨가 정부의 발표를 조롱했다는 이유로 방송 중지를 요청한 뒤 내려진 결정이어서 정치적 외압이 작용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MBC '일밤-진짜사나이' 제작진은 이날 "이씨의 천안함 관련 발언을 인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섭외를 했다"며 "논의 끝에 전사자와 유가족에 대한 예우를 지키기 위해 이씨의 강연을 방송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일요일 저녁 방송되는 '진짜 사나이'는 연예인들의 군생활 체험을 담는 프로그램이다. 이씨의 강연은 지난 16일 2함대 사령부 장병을 대상으로 진행됐으며, 내달 방송 예정이었다. 프로그램을 연출한 김민종 PD는 불방 결정과 관련해 "국방부의 요청은 없었다"면서도 "군의 협조로 만드는 프로그램인 만큼 정치적으로 민감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20일 이씨의 강연 녹화 소식을 전해 들은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이씨가 2010년 천안함 폭침 당시 정부 발표를 '소설'이란 표현으로 조롱했다"면서 MBC측에 방송 중지와 공식 사과를 요청했다. 하 의원은 이날 MBC의 결정에 "시청자들의 압도적인 뜻에 따라 순국영령들과 유족들에 대한 예의를 갖춘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외수씨는 강하게 반발했다. 그는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대한민국은 국민이 정부의 발표에 반하는 의견을 제시하면 국회의원이 외압을 가해서 강연이나 TV 출연을 금지하는 민주(헐)공화국입니다. 사살당한 기분입니다"라고 밝혔다.
MBC의 통편집 결정에 대해 정치적 영향력이 예능 프로그램의 제작 자율성을 해치고 표현의 자유까지 제한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확산되고 있다. 추혜선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은 "집권세력이 예능 프로그램 제작에까지 노골적으로 개입해서 편집을 강요한다는 것은 제작 자율성 침해 차원을 넘어 언론의 사회ㆍ문화적 기능을 마비시키는 행위"라고 말했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반대하는 사람들의 존재를 아예 없애버리려 드는 원시적 폭력성"이라고 꼬집었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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