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초 미국 유학 시절 두 아들은 NBA의 매력에 푹친형 장대한 최근에 세상 떠나 "밤마다 울었지만 지금은 괜찮아이젠 형 몫까지 열심히 뛸 것"최고의 멘토인 아버지의 조언은 "묵묵한 성실함을 이기는 것 없다"
훤칠한 키에 균형 잡힌 몸까지 쏙 빼 닮았다. 종목은 다르지만 대물림 된 '운동 DNA'는 숨길 수 없다. 프로농구 KCC 2년차 포워드 장민국(24·199㎝)은 왕년의 배구 스타 장윤창(53ㆍ195㎝) 경기대 교수의 아들로 부자 스타 탄생을 예고했다.
2012년 1라운드 전체 10순위로 KCC 유니폼을 입을 당시 장민국은 많은 주목을 받았지만 지난 시즌 개막 직전 왼 발목 피로 골절로 한 시즌을 통째로 날렸다. 꿈에 그리던 프로 무대를 앞두고 기나긴 시간 동안 재활에 매진하며 하루 빨리 코트로 돌아가기 위해 독기를 품었다. 그리고 마침내 올 시즌 개막과 함께 주전급 선수로 발돋움했다. 장민국은 22일 현재 경기당 평균 27분 23초를 뛰며 8.5점 3.5리바운드로 지난 해 꼴찌였던 KCC의 상승세를 이끌고 있다.
"배구계 재목을 놓쳐", "농구가 좋다"
대개 운동 선수 출신은 2세가 같은 길을 걷는 것을 만류한다. 먼저 힘든 길을 걸어봤기 때문에 자식만큼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을 안고 있다. 그러나 자식을 이기는 부모는 없다. 장 교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장 교수는 "1990년대 초반 미국 버지니아에서 유학을 할 때 가족들을 데리고 갔다"면서 "당시 학교 방과후 체육 활동으로 자주 축구를 하던 민국이가 형이 농구하는 것을 보며 졸졸 따라다니더니 어느새 농구에 푹 빠졌다"고 말했다. 장민국은 "미국에 있는 동안 농구 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품었고, 미국프로농구(NBA)를 즐겨봤다"며 "특히 존 스탁턴(유타 재즈)의 플레이에 매료됐다"고 했다. 그 때 장민국의 취미 활동은 농구와 더불어 NBA 카드 수집이었다.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장 교수는 2002년 아들이 중학교에 진학할 당시 농구 선수를 하겠다고 하자 반대를 했지만 확고한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장민국의 중학교 1학년 때 키는 164㎝로 큰 편이 아니었다. 내심 운동을 시작한다면 배구를 하기 바랬는데 키가 작아 말리지 않았다. 그러나 불과 1년 사이에 반전이 일어났다. 15㎝나 훌쩍 커 179㎝가 됐고, 이듬해에는 186㎝까지 컸다. 장 교수는 "키만 일찍 컸더라면 배구를 시켰을 텐데"라며 "배구계가 큰 재목을 놓쳤다"고 웃었다. 장민국은 "농구에 재미를 느껴 다른 종목은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가슴 속에 품은 그 이름 '장대한'
장민국은 얼마 전 눈물의 방송 인터뷰로 슬픈 사연을 공개했다. 한 때 농구를 같이했던 세 살 위의 친형 장대한이 지난 9월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장민국은 6일 동부전 승리 이후 "시즌 두 번째 경기에서 굉장히 잘 했는데 형의 칭찬을 듣지 못했다"며 말을 잇지 못한 채 울먹였다.
장 교수는 인터뷰 장면을 보지 못하고 얘기를 통해 전해 들었다. 그는 "형에 대한 그리움을 많이 갖고 있더라"면서 "항상 민국이를 어리게만 봤는데 마음이 아프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내색 한번 안하고 묵묵히 참고 뛰는 모습이 대견스럽다"고 토닥여줬다.
장민국은 당시 상황에 대해 "내가 항상 잘 할 때는 제일 먼저 형한테 연락이 왔는데 어느 순간 익숙했던 연락이 안 오자 예전 생각이 났다"며 "그래서 4일 동안은 밤마다 울었고, 슬럼프도 찾아왔다"고 돌이켜봤다. 이어 "하지만 지금은 괜찮아졌다"면서 "형 몫까지 열심히 뛰겠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장민국은 집에서 어떤 아들일까. 장 교수는 "형이 애교를 부리는 반면 민국이는 조용히 자기 할 일을 한다"고 했다. 이에 장민국은 "형처럼 분위기 메이커가 되려고 하는데 평생 안 해보던 것이라 아직 어색하다"며 "대신 부모님께 많은 용돈을 드리고 있다"고 웃었다.
아들에게 건네는 조언 "곰처럼 우직하게"
장 교수는 누구보다 아들의 마음을 잘 안다. 운동 선수라면 필연적으로 따르는 부상이나 승부 세계의 치열한 생존 경쟁 등 먼저 겪어본 만큼 해줄 말도 많다. 아들로써는 최고의 멘토를 만난 셈이다. 장 교수가 아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은 '성실함'이다.
"곰처럼 우직하게 해라. 성실함을 이기는 것은 없다. 선수 생활은 절대 평탄한 길이 아니다. 인간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시련이 찾아온다 해도 좌절할 필요는 없다. 그만큼 더욱 단단해지는 계기가 된다. 묵묵히 성실하게 할 것만 하면 인정 받는 선수가 될 수 있다."
장민국은 아버지의 조언을 깊이 새겨 들었다. "평소에 술, 담배를 피하라고 많은 강조를 해줘 멀리하고 있다. 운동을 성실히 하는 것은 물론 분석도 열심히 해야겠더라. 1라운드에는 슛을 던질 때 상대가 잘 안 막았는데 지금은 좀처럼 기회가 잘 안 난다. 분석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꼈다."
장민국에게 아버지의 그림자는 어느 정도일까. 장 교測?"민국이가 어렸을 때라 선수 시절 유명했는지 잘 몰랐을 것"이라고 손사래를 쳤지만 장민국은 "최고의 선수였는데 부담이 안 될 수가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부담도 나중엔 익숙해지니 이를 즐길 수 있었다. 그는 "고등학교 3학년 때 팀의 주축으로 성장하면서 부담감은 즐거움으로 뒤바뀌었다"고 설명했다.
김지섭기자 on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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