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년(週期年). 60주년을 일컫는 말이다. 사전적 의미론 '같은 현상이나 특징이 한번 나타나고부터 다음 번 되풀이 되기까지의 기간'이다.
1954년 첫 발을 내디딘 부산~서울대역전경주대회(이하 경부역전마라톤)가 내년 60돌을 맞이한다. 한국전쟁으로 초토화된 국토. 온전한 도로를 찾아보기 어려웠을 당시, 한국일보는 부산에서 서울, 나아가 북녘 땅까지 릴레이 마라톤으로 달린다는 '혁명적인 발상'을 한 것이다. 너나없이 춥고 배고프던 시절. 마라톤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주저앉지 않았다.
주린 배를 물로 채우고, 밑창이 너덜거리는 신발도 마다하지 않고 온 산하를 뛰고 달렸다. 먼지가 풀풀 거리는 비포장도로는 차라리 안방처럼 편안했다. 겨울을 재촉하는 눈비를 맞으며 논두렁도 달려야 했고, 때론 샛강도 건너뛰어야 했다.
그 지난(至難)한 과정 속에 한국 마라톤의 현대사가 고스란히 녹아 들었다. 손기정~남승룡~서윤복~함기용~송길윤~최윤칠로 대표되던 1930~50년대 한국 마라톤은 1958년 도쿄 아시안게임 마라톤에서 이창훈의 금메달 이후 깊은 동면에 빠졌다. 그러나 신세대 주자들은 경부역전마라톤을 통해 끊임없이 마라톤에 '새 피'를 공급했다. 마침내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과 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황영조와 이봉주가 나란히 금, 은메달을 수확하는 쾌거를 올렸다.
이봉주는 5년 뒤인 2001년 4월 세계 최고 전통의 보스턴 마라톤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육상인들은 입을 모은다. 그 중심에 경부역전마라톤이 있다고.
부산 시청앞 광장에서 24일 출발하는 제59회 경부역전마라톤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 마라톤의 현재와 미래를 짊어질 9개 시도의 건각들이 일주일 동안 거친 호흡을 뿜어내며 국토를 종단한다. 총 연장 534.8㎞구간에서 15세 막내부터 36세 최고령까지 어깨 끈을 주고 받는다. 올해는 특히 경기 파주시 민간인출입통제구역 최북단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까지 코스를 연장해 의미를 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선수단 규모도 출발지 부산이 합류해 어느 해 보다 풍성하다.
지난 10월 인천 전국체전 남자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박주영(35)은 올해도 어김없이 고향 전남 대표로 출사표를 던졌다. 불과 한달 전 42.195㎞를 소화해 피로가 쉬 풀리지도 않았지만 신발을 끈을 동여맸다. 사실 전남은 대회 종합우승과는 거리가 먼 팀이다. 또 경부역전마라톤 코스에도 포함되지 않아 참가에 열의를 내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여든을 훌쩍 넘긴 고령에도 불구하고 전남육상경기연맹 단장을 맡고 있는 강방원 옹의 의지로 매년 대회에 개근하고 있다. 정동기 단장이 이끄는 강원도도 마찬가지다. 경부역전마라톤이 지역을 통과하지 않지만 최선근 강원육련 실무부회장의 지도로 고른 기량을 갖춘 선수를 배출하기로 육상계에 입 소문이 나 있다.
국제육상경기연맹이 공인한 '국제 육상도시' 대구도 선수 부족에 허덕이지만 대회 출전각오는 금메달감이다. 김범일 대구시장이 남북한 국토종단은 물론 유라시아 철길 개통에 앞서 마라톤으로 대륙을 이어 달리는 시범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경부역전마라톤에 각별한 애정을 보내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번 대회 임원장을 맡은 최경열(55) 대한육상경기연맹 전무이사는 "선수시절 청춘을 묻은 대회여서인지 경부역전마라톤이란 말만 들어도 가슴이 설렌다"며 "60주년을 맞는 내년에는 반드시 개성공단을 너머 달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새롭게 시작하는 향후 60주년에는 남과 북, 나아가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 지르는 대회로 업그레이드 시켜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난 8월 모스크바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북측 마라톤위원장을 만나 남북한 관통에 대해선 이미 긍정적인 메시지를 받았다"고 강조했다.
최형철기자 hc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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