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일이다. 6월 중순에 나는 일본 교토에서 개최된 일본 삼국지학회의 학술세미나에 발표자의 한 사람으로 참석했다. 삼국지를 중심으로 중국사와 동아시아 문화를 연구하는 학회인 일본 삼국지학회에서 우리나라 삼국지 그림의 내용과 종류 및 특성 등을 소개할 기회라 나름 정성껏 준비했다. 넓은 발표장에 가득 찬 청중을 보니 삼국지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고 열띤 질문과 토론은 발표자를 긴장하게 했다.
순서가 되어 삼국지의 조선전래와 우리나라 삼국지 그림의 대부분을 이루는 민화를 중심으로 중국과 일본의 삼국지 그림을 비교하였다. 경극의 한 장면 같이 과장되고 화려한 중국 삼국지 그림과 꽉 짜인 구도 속에 기교적이고 감각적 표현으로 가득한 일본 그림에 비하여 해학적이고 풍부한 상상력이 넘쳐나는 민화의 특성을 강조했다. 그러다보니 민화의 정의와 성격, 연구사를 언급하게 되었다. 민화라는 단어를 만든 야나기 무네요시에 대한 언급을 시작으로 민화의 의미와 범주에 대하여 여러 문장으로 조금은 길게 설명하였다. 그런데 통역을 맡은 분이 그 내용을 한 문장으로 짧게 통역해 버리자 조금 당황했다. 민화의 정의와 개념 말고도 발표할 분량이 많았기에 별 문제없이 발표를 마치고 여러 질문을 받은 후 단상을 내려갔다. 세미나 이후 뒤풀이 등 여러 행사가 있었고 다음날에는 출국해야 했기 때문에 정신없이 시간이 지났다.
그렇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찜찜함이 남아 있었다. 나로서는 발표에서 민화의 정의와 규정 등에 대한 내용이 명확히 제시 되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조금은 부족한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미나 후 몇 달 뒤에 당시 통역을 해주셨던 교토대학의 교수님께서 우리나라에 오실 일이 있어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 분은 재일동포이지만 민족의식이 투철한 부모님 덕분에 우리나라에서 초등학교 교육을 받았기에 정확한 우리말을 구사하셨다. 게다가 전공은 중국문학이니 한중일의 문화와 풍토를 잘 이해하는 분이셨다. 내가 세미나에서의 일에 대하여 묻기도 전에 먼저 "한국 사람들은 정의 내리기를 좋아한다"며 말문을 여셨다. 순간 이 분도 그 때의 일을 기억하고 계시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놀라웠다.
그 분의 말씀을 정리하면 이렇다. 국제학술회의에서 한국 사람들의 발표를 들어보면 대개 정의를 내리고 구분하는 것이 하나의 관행이자 중요한 연구방법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하셨다. 중국에서 열린 어떤 학회에서는 한국발표자가 발표 시간 내내 구체적 내용을 언급하지 않고 정의를 내리고 규정하고 구분만 하여 토론시간에 소동이 벌어진 일도 있었다고 했다. 이러한 경우가 드물지 않아 한국 학자를 부를 경우에는 학술회의의 취지와 방향을 잘 알려야겠다고 중국과 일본 학자들이 모여 심각하게 얘기한 적도 있다고 했다. 규정이나 정의는 사람마다 다 다르기 때문에 그 분류 방식에 대하여 심각한 의미를 두는 것이 적절하지 않고, 특히 일본인들은 내용 곧 실질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규정과 정의에 별 관심이 없다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핀잔을 주는 말씀이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난 잔잔한 충고의 말씀이어서 대단히 고마웠다. 감사의 인사를 드렸지만 얼굴이 화끈거리고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규정하고 분류하기를 얼마나 좋아하던가. "○○는 보수 꼴통"이고 "○○는 좌빨" 아니 "종북"이고 "○○는 홍어", "○○는 흉노족"으로 규정하며 진영의 논리를 일삼지 않았던가? 주장과 내용을 검토하기 전에 지역과 학연, 혈연 등으로 규정부터 하고 편을 나누고 상대방을 비난하는 데에 익숙하지 않은가 말이다. 일상의 경향이 학술발표의 장에까지 '자연스럽게' 연결되었기에 외부의 시선에 그처럼 두드러져 보인 것이 아닐까 싶다. 실제의 내용에 대한 치밀한 탐구 없이 정의를 내리고 규정하는 행위는 본질에의 접근을 방해하고 포용력을 약하게 하는 편견일 뿐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미 몸에 배었으니 어떻게 고칠까 그게 걱정이다.
김상엽 건국대 인문학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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