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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11월 22일] 수명을 다한 우리의 고용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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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11월 22일] 수명을 다한 우리의 고용시스템

입력
2013.11.21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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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고용시스템이 수명을 다했다. 고용시스템이 위기이다. 흔히 고용위기를 말하지만, 이는 고용시스템의 위기가 외화된 것에 불과하다. 그 위기는 우리에게 바짝 다가와 있으나 위기로 느끼지 못하니 정말 위기가 아닌가? 그게 무슨 말인가? 고용시스템은 우리의 고용을 유지하고 규율하는 규칙, 구조, 내용을 포괄하는 체계로서 전체를 말한다. 현 고용시스템은 1960년대 이래 산업화 시대에 형성, 발전하여 1980-90년대의 IMF위기를 거치면서 일정한 변화를 거쳐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 고용시스템이 새로운 경제사회환경과 노동시장환경에서 순기능을 하기는커녕 역기능을 하면서 폐해를 낳고 있다.

1970년대~1990년대까지 우리 고용시스템은 남성가장 외벌이모델, 연공적 보상과 승진, 정규직 전일제 중심, 장시간 노동, 비교적 낮은 임금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그런 고용시스템이 순기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고도성장을 통해 일자리가 확대되는 가운데 정규직 채용기회가 많았고, 승진기회가 모두에게 열려 있었으며, 물가가 저렴하여 생계비가 상대적으로 낮아 남성외벌이로도 살 수 있었던 데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 말 이래 우리를 둘러싼 경제사회환경과 노동시장환경 및 인구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먼저, 중국과 동아시아 다른 나라들의 빠른 산업화로 과거와 같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모델로 저임금가격경쟁을 할 여지가 줄어들었다. 또한 경제의 서비스화가 가속화되면서 대부분의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서비스업에서는 좋은 일자리가 많이 창출되지 않는다. 셋째, 경제가 구조적으로 양극화되고 있다. 재벌 대기업들이 경제의 핵심영역을 독점하고 비핵심적인 영역을 외주화, 하청화함으로써 이익은 전적으로 취하면서도 부담을 떠넘기는 구조가 심화되어 왔다.

인구학적인 변화도 기존 고용시스템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 첫째, 인구의 고령화가 급격하게 진행되어 심각해진 노인빈곤, 중고령자들의 일자리 요구 등을 현 고용시스템은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기업들이 28~55세의 왕성한 근로자들을 장시간 일을 시키고는 50대 중반에 조기퇴직시키는 전략도 문제지만, 우리의 연공적인 임금과 승진시스템이 이런 경향을 악화시키고 있다. 출생 후 대졸 때까지 27년간 부모부담으로 자라고 교육을 받고, 28세 취업 뒤 55세까지 28년간 돈을 벌고, 55세 퇴직 뒤 죽을 때까지 25~30년간을 저축한 돈을 쓰거나 국가나 자식에게 의지해야 한다. 80세 인생 중 1/3만 고용되는 이런 고용시스템은 지속가능성이 없다.

또한 고졸자의 대학진학률이 75%가 되는 고학력화 시대가 되었다. 이들 고학력 젊은 층은 더 이상 3D 일자리에 취업하고자 하지 않는다. 일자리가 없는 것이 아니라 싼 일자리는 많지만, 젊은 사람들이 구하는 양질의 일자리가 크게 부족하다. 고학력화되고 의욕이 있는 젊은 여성인력이 취업할 수 있는 곳은 저임금, 저숙련 일자리가 대부분이어서 유능한 여성인력이 활용되지 않고, 전일제 장시간 문화가 지배하는 현 고용시스템 아래에서는 임신, 출산, 육아시기에 취업 여성들이 일과 가정의 양립을 하기가 곤란하며 30대 전반의 젊은 여성들의 경력단절을 낳고 있다.

그뿐 아니라 1990년대 후반 이래 대기업이나 공공부문에서 일하는 노동시장의 내부자들의 규모가 줄어들고, 하청 중소기업, 소기업에 고용된 근로자, 비정규직 근로자 등 노동시장의 외부자들 사이에 고용안전, 월급과 대우에서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사실상 같은 일이나 유사한 일을 하고도 단지 중소기업에 소속돼 있고,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대기업 정규직 보다 낮은 임금과 대우를 받고 있다. 노동시장의 불공정성이 좁혀지기는커녕 더욱 커지고 있다.

이처럼 고령자와 여성 차별적이고, 청년들에게 친화적이지 않으며, 양극화와 불공정성을 낳고 있는 우리의 고용시스템은 더 이상 지속가능성이 없다. 그러나 대안적인 고용시스템은 아직 멀다. 이것이 우리의 고용시스템의 위기이다. 이런 위기가 느껴지는가? 느껴지지 않으니 더욱 위기이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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