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격 이후 주민들이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섬을 만들기 위해 정부가 수백억 원을 쏟아 부었다는데 정작 주민들의 삶은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어요. 아픈 기억만 끄집어내는 기념행사 말고, 실질적인 도움이 필요합니다."
연평도 포격 도발 3주기를 사흘 앞둔 20일. 인천 옹진군 연평도에서 만난 주민들의 얼굴에는 고단함이 가득했다. 집집마다 김장과 땔감 마련 등 겨울나기 준비로 바빴다. 막바지 가을 꽃게 잡이도 한창이었다.
2010년 11월23일 북한의 포격으로 민간인 2명과 해병대 장병 2명 등 4명이 숨지고 건물 43채가 잿더미로 변했던 그날의 충격과 공포는 3년의 시간만큼 흐릿해진 것처럼 보였다.
포탄에 맞아 파괴된 주택 3채를 복구작업 없이 남겨둔 피폭건물 보존구역, 축구공 만한포탄 구멍이 뚫려 있는 연평종합운동장 외벽은 당시 참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지만 새로 지은 32채의 집과 상가, 아스팔트 깔린 도로는 연평도의 달라진 모습이었다.
하지만 주민들은 "갈수록 살기 힘들어진다"며 얼굴의 그늘을 벗지 못했다. 포격 이후 연평도에 대한 전폭적 지원을 약속했던 정부에게 속았다는 실망감이 컸기 때문이다.
박태환(72) 연평도 노인회장은 "서해5도 지원 특별법이 만들어지고 막대한 예산이 투입됐다는 데 주민들 생활은 나아진 것 없이 군인 숫자만 늘었다"며 "국가가 해준 건 우리가 생명수당이라 부르는 정주생활지원금(1인당 월 5만원), 한 달에 8일로 한정해 하루 3만 6,000원씩 주는 특별취로사업이 전부"라고 말했다.
숙박업소를 운영하는 김영식(62)씨는 "지금은 군 부대 공사로 인해 인부 200~300여명이 들어와 있어 괜찮지만 공사가 끝나면 뭐해 먹고 살 것인지 걱정"이라며 "군인 가족들도 자식이 연평도로 간다 하면 죽는 줄 아는데 위험지역으로 알려진 이곳에 누가 오겠나"라고 말했다.
정부는 포격 이듬해인 2011년 6월 연평도 백령도 등 서해5도에 2020년까지 민간자본 등 9,190억원을 투입해 주거환경 개선 등 78개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종합발전계획을 내놓았었다.
하지만 주민들의 체감도는 크게 떨어진다. 인천시는 내년 서해 5도 발전계획 사업 예산으로 국비 413억원을 신청했지만 243억원만 반영됐다. 지난해에도 500억원의 국비 신청액 가운데 정부가 실제 준 돈은 374억원이었다.
때문에 관광객 유치와 주민들의 이동을 위해 뱃삯을 지원하는 팸투어 사업은 시비와 군비로만 충당하고 있다. 낡은 병원선 교체, 어업지도선 개량, 민박·펜션 확대 계획 등도 국비가 부족해 지지부진하다.
연평도 관광객은 2010년 2만2,000여명에서 2011년 3만5,000여명으로 늘었지만 지난해 2만500명, 올해 2만1,000명으로 예년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관광객이 오전에 배를 타고 들어와 오후 늦게 다시 나가는 '일일관광객'인 점도 주민들의 삶에 직접적인 도움은 안된다는 지적이다.
한 주민은 "작년부터 생긴 일일 관광객들은 먹는 물까지 다 뭍에서 가져와 쓰레기만 남기고 돌아간다"며 "돈 들여 여객선사만 배 불리고 주민들은 뒤치다꺼리만 하는 셈"이라고 불만을 드러냈다.
꽃게조업도 예전만 못해 주민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이진국(55) 연평도 선주협회 부회장은 "3, 4년 전과 비교해 꽃게가 반도 안 잡히고 가격도 1㎏당 2만5,000~2만6,000원 하던 것이 1만5,000원까지 떨어졌다"며 "꽃게가 잘고 살이 차지 않는 등 질마저도 나빠졌다고 말했다.
연평어장 어획량은 2009년 295만㎏에서 2010년 242만㎏, 2011년 225만㎏, 지난해 189만㎏으로 4년째 감소 추세다. 조업 종료를 한 달 남긴 지난 달 말 기준으로 올해 어획량은 79만㎏에 그쳤다. 5년 전에 비하면 반토막 수준이다.
연평도=이환직기자 slamh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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