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술계가 한껏 기대에 부풀었다. 2009년 당시 정부가 나서 한국미술 역사상 기록할만한 예산 규모와 파격적인 결단으로 추진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11월 12일 기념식을 갖고 새로운 미술관 시대를 열었기 때문이다. 왕의 잔치에 노랫소리 높듯이 개관특별전이 열리는 서울관 전시실 곳곳이 우리나라를 포함 세계 유수 작가들 작품으로 쟁쟁하다. 또 번창하는 집안에 사람이 몰리듯 국내외 미술 전문가 및 각종 언론은 물론 시민과 외국인 관광객까지 앞 다퉈 그곳을 찾는다. 트위터, 페이스북, 블로그에는 서울관에 관한 언급들이 유행처럼 번져나가고 있고, 인터넷 검색을 하면 벌써 관광명소 사이트와 구인구직 사이트에까지 해당 정보가 잡힌다. 그래서 한국미술계가 한껏 들떠있는 것이다. 작가들은 권위 있는 기관에서의 전시와 작품소장 기회가, 화상들은 새로운 영업과 이익이, 미술계 관련 인력들은 더 많고 좋은 일자리가, 미술애호가들은 보다 멋지고 편한 문화향유가 약속됐고 곧 현실이 된다고 느껴지는데 기대감이 부풀지 않을 이유가 없다.
1969년 경복궁에서 출발해 1973년 덕수궁 석조전 동관으로 이전했다가 1986년에야 비로소 옛 궁에서 더부살이하는 삶을 끝내고 과천에 독립된 터를 잡은 국립현대미술관. 그러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유일한 국립 미술관임에도 불구하고 서울에서나 지방에서나 한 번 가려면 큰맘 먹어야 할 정도로 접근성이 좋지 않고, 주말 또는 나들이철만 되면 미술관 앞에 위치한 놀이공원 인파에 밀려 전시 관람이 외려 정신 나간 짓처럼 느껴지는 곳. 물리적인 조건의 한계뿐만 아니라 지난 26년간의 전시 기획과 작품 수집, 교육과 행정 이력에도 불구하고 국내외 미술사적 성과 축적 및 독창적 비전 제시 면에서 국립미술기관으로서 제 역할을 못한다는 비판이 수시로 제기되는 곳. 과천을 근거지로 한 국립현대미술관의 지난 시간들은 이 같은 한계와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채 흘렀다. 하지만 그 한계와 비판이 쓴 밑거름이자 동력이 되어 오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기대를 걸고 꿈을 꾸는 공간이 탄생했음도 사실이다. 그리고 이제 그 기대와 꿈은 한국미술의 지형지세를 크게 변화시키라는 요구로 발전하고 있다. 총사업비 2,460억 원을 들여 연면적 5만2,000㎡에 지상 3층, 지하 3층 규모로 8개 전시장과 멀티 프로젝트 홀, 영화관, 도서관, 각종 편의시설을 갖춘 서울관이 삼청로 일대 풍경을 스펙터클하게 바꾼 만큼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관이 개관에 맞춰 대외에 던지는 첫 비전 선포이자 함께 즐길 축제로 꾸린 '개관특별전'은 넓은 시각에서 공평하고 정대하게 평가 받아야 한다. 예의상 던지는 공치사나 반대로 일단 의혹을 부각시켜 길들이려는 상투적 저널리즘으로는 충분치 않다. 또 미술관 측이 제공한 보도 자료에 입각해 단편적인 정보만 쏟아 내거나, 무조건 해외 사례를 추앙하면서 정작 여기 미술관 정책방향과 전시기획에 대해서는 마구잡이로 다잡는 평가를 피해야 한다.
서울관은 기존의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과 덕수궁분관, 그리고 청주에 준비 중인 미술품 수장 및 보존센터와 더불어 한국미술의 패러다임 전환을 담당할 중추다. 따라서 국내와 국외, 근대와 현대, 개인 작가와 그룹, 현장제작 작품과 소장품, 그리고 장르와 영역을 융합 횡단하는 국립 미술관의 문화정치학이 발휘되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현재 다섯 개로 이뤄진 개관특별전을 평가하면 어떤가. 한편으로 다국적 큐레이터와 작가, 건축가, 공학자, 천문학자, 생태학자 등 미술관 외부 인사를 초대해 이벤트를 조직함으로써 서울관은 내부적으로 그렇게 염원해온 세계적인 미술관 내지 문화 플랫폼으로 발돋움할 물꼬를 텄다. 하지만 개방적이면서도 통합성 및 위엄이 느껴지는 하드웨어와는 달리, 각자의 이해관계로 쪼개진 '연결_전개'전과 시대정신보다 시대착오가 두드러진 '자이트가이스트: 시대정신'소장품전은 국립현대미술관의 문화정치학이 어디쯤에서 고여 있는지 말해준다.
강수미 미술평론가 ㆍ동덕여대 회화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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