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균이 숨 쉬는 소리를 잘 들리게 하는 방법이 없을까요."
유산균 전문가인 정가진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지난 6월 김은정 LG전자 김치냉장고 수석연구원으로부터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김 연구원은 세계 최초로 유산균 생성 촉진 기능이 탑재된 김치냉장고를 개발했는데, 이를 소비자에게 확실히 알리기 위해 소리를 들려주는 방법을 생각한 것이다.
"김치에서 유산균이 만들어 지는 지 궁금해서 김치통에 귀를 대보고 소리를 듣긴 했지만 확신할 수 없다"는 정 교수의 대답에 LG전자 연구팀은 무조건 유산균 소리 채집에 들어갔다. 음향 전문가들이 8월 출시한 '디오스 김치톡톡' 냉장고에 김치를 담은 뒤 배춧잎 사이, 포기와 포기 사이에 손톱보다 작은 마이크 14개를 설치했다.
그때부터 소리와의 싸움이 시작됐다. 관계자들이 헤드폰을 쓴 채 불침번을 서며 소리를 기다렸다. 4일 동안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해 포기하려던 중, 물방울이 터지는 듯한 작은 소리가 감지됐다.
성공이었다. 정 교수는 "김치의 톡 쏘는 맛을 만드는 김치 유산균인 류코노스톡균이 포도당을 먹으면 탄산가스를 만들어 내는데, 김치 국물 속에 숨어 있다가 올라오면서 터지는 소리"라고 설명했다. LG전자는 이 소리를 따로 녹음해 매장을 찾는 소비자들에게 들려준다. 그렇게 해서 세계 최초로 유산균이 많이 생성되도록 돕는 김치 냉장고가 빛을 보게 됐다.
LG전자 김치연구팀이 이렇듯 유산균에 집착한 까닭은 무엇일까. LG전자 창원공장의 김경남 김치냉장고 사업실장은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과 조류독감이 창궐했을 때 김치 유산균이 예방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김치냉장고 역시 맛과 함께 건강에 도움 되는 기능이 중요해졌다"고 설명했다.
종가집 등 김치 제조 업체들 역시 10여 년 전부터 김치유산균이 빨리 생기고 오랫동안 죽지 않고 맛을 유지할 수 있도록 각자의 '종균'을 만들어 김치에 넣어주는 등 유산균 연구를 해왔다.
이에 뒤질세라 LG전자는 2010년부터 맛있는 김치유산균이 잘 생기고 반대로 신맛을 내는 락토바실러스균을 억제하는 냉장고를 만들기 위해 김치용기를 만드는 락앤락, 장해춘 조선대 교수 등 국내 김치 전문가들과 함께 공동 연구를 진행했다. 특히 시간, 온도, 밀폐 여부 등 갖가지 변수를 바꿔가며 유산균 생성과 유지기간 등을 점검했다. 김은정 연구원은 "1번 실험할 때마다 10대의 김치냉장고에 수도권, 전라도, 경상도 등에서 사 온 김치를 가득 채웠는데, 김치 구입 비용만 1,000만원 가까이 들었다"며 "연구원들이 김치 안에 들어있는 수 백, 수 천만 마리의 유산균을 세다 보면 온 몸이 김치 신 맛으로 뒤덮이고 밥도 못 먹고 버스도 타지 못했다"고 전했다.
그렇게 1년 넘게 실험과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오감테스트 등을 진행한 연구팀은 6도에서 1,2일 보관하고 이후 온도를 조금씩 낮춰가면 6일 후 기존 김치냉장고 보다 유산균을 9배까지 늘릴 수 있는 비법을 개발했다.
여기에 마지막으로 판매에 도움되도록 유산균 소리를 녹음해 매장에 배포한 것이다. 덕분에 소위 유산균 김치냉장고의 판매도 크게 늘었다. LG전자 창원공장 관계자는"실제 매장에서 소비자들에게 유산균 터지는 소리를 들려줬더니 반응이 매우 좋았다"며 "지난해 판매량이 주춤했던 김치냉장고도 올 들어 예상보다 많이 팔려 2주 연속 주말 특근을 해야 할 정도"라고 강조했다.
창원=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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