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는 지난 수십 년간 남북분단과 군사적 대치로 인해 국가 신용등급이 하락하고 각종 경제적 불이익을 받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그런데 분단의 일상화로 인해 우리는 그 고통과 비용에 점차 익숙해졌다. 우리의 노력만으로 분단을 극복하기 어려워 반(半)체념에 빠져 이를 운명적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분단이 일상화되면서, 통일이 중장기적으로 가져올 엄청난 정치외교적 가치와 사회경제적 편익을 알지만 단기적인 혼란과 통일비용 때문에 통일을 외면하는 이도 적지 않다. 따라서 정부와 시민사회는 통일교육을 통해 국민에게 통일의 가치와 이익을 상기시키고자 노력한다.
설상가상으로 북핵위기의 일상화마저 우려된다. 지난 20년째 비핵화를 위한 집중적인 외교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핵능력과 핵위협은 증가일로에 있다. 그 결과, 우리는 '분단 디스카운트'에 더해 '북핵 디스카운트'까지 지불하게 될 것이다. 북한 핵능력이 매년 증가하는 현 추세가 지속된다면 '북핵 디스카운트'와 이에 따른 비용도 더욱 커질 전망이다.
북핵위기가 더욱 고착화되기 전에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분단위기와 마찬가지로 일상화될 가능성이 높아 우려된다. 북핵에 대한 경각심을 다지기 위해 북핵위기로 인한 기회비용과 고통을 되짚어보자.
첫째, 북핵은 우리에게 최대 안보위협 요소인 동시에 새로운 종류의 안보위협이다. 북핵으로 인한 추가 안보위협을 상쇄하기 위해서 타 분야의 예산을 희생해서라도 킬-체인과 같은 첨단 국방시스템을 새로이 구축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의 핵무장이 오히려 값싼 방안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국가이며 비확산의 모범국인 한국에게 결코 옵션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한미동맹과 미국 핵우산에도 더욱 의존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핵무장한 북한이 더욱 무모한 군사적 모험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안보불안은 계속 남아있다.
둘째, 북핵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크다. 북한의 각종 핵도발은 즉각적으로 채권시장, 주식시장, 투자시장, 남북경협 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국가경제뿐만 아니라, 개인과 기업에게도 심대한 손실을 입힌다. 만성화된 북핵위기도 국가신용도에 반영되고 국가와 기업에도 추가비용을 전가시켜 국제경쟁력을 약화시킨다.
셋째, 우리의 귀중한 외교역량과 외교자본이 비핵화외교에 과도하게 쏠린다. 한국은 경제적 생존과 번영을 위해 통상외교, 자원외교, 에너지외교에 더 많은 외교역량을 투입해야 하지만, 긴급한 북핵 위협 하에서는 그럴 여유가 없다. 더욱 생산적인 부분에 투입되어야 할 외교역량과 외교자본이 안타깝게도 북핵외교에 소진되는 셈이다.
또한 북핵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여 우리의 안보환경을 크게 훼손시킨다. 북핵은 일본의 재무장과 우경화 추세를 촉진시키고, 중국의 한반도문제에 대한 개입과 발언권을 확대시키며, 한반도에서 미중 갈등을 유도하는 경향이 있다.
넷째, 우리의 대북정책 전반이 북핵의 인질이 된다. 우리는 북한과 관계개선, 경협, 인도지원, 이산가족상봉, 군사적 긴장완화 등 많은 현안을 갖고 있는데, 북핵으로 인해 모든 것이 정체되어 있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도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좋은 비전과 방법론을 제시하였지만, 북핵의 인질이 되어 좀처럼 그 구상을 펼칠 기회를 갖지 못한다. 그리고 북핵은 남북통일에도 중대한 장애물이 된다. 주변국들이 핵능력을 물려받을 통일한국의 등장을 결연코 반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20년간 북한 핵능력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이에 따라 북핵위기의 군사·외교·경제적 비용도 증가하였다. 북한은 핵능력이 증가하는 만큼 비핵화에 대해 더 큰 보상을 요구하지만, 우리는 북한의 가중되는 잘못에 대해 더욱 보상하기 어렵게 된다. 따라서 북한의 핵능력이 증강 될수록 비핵화 가능성은 더욱 낮아지는 셈이다. 창의적이고 과감한 비핵화정책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전봉근 국립외교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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