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당국이 원ㆍ달러 환율 1,050원대 수호를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지난달 24일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이 고강도 공동 개입을 해 더 이상 하락을 막았던 1,054원선이 가까워오자 또다시 공개 발언과 미세조정, 종가 관리 등을 통해 1,050원 중반이 깨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모습이다. 경제 전문가 사이에선 "사실상 공인된 원ㆍ달러 환율 한계선인 1,050원대가 깨지면 엄청난 물량이 쏟아져 나올 것이므로 관리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의견과 "특정 선을 정해놓고 막는 방식은 실효성이 떨어지고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20일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경제동향간담회에서 "미국의 양적완화로 환율이 많이 변한 건 사실"이라며 "호주, 인도, 터키 등의 통화가치는 많이 내렸지만 우리나라는 거기서 벗어나 있다"고 언급했다. 우리나라의 환율이 다른 나라에 비해 빠르게 내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외환당국은 최근 거세지고 있는 원·달러 환율 하락세를 두고 '좌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연저점(달러당 1,054.3원) 붕괴를 눈앞에 둔 상황에서 환율이 더 밀렸다간 자칫 달러당 1,000원까지 힘없이 내주게 돼 수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당국은 전날에도 환율이 장중 1,054.8원까지 급락하자 여러 은행을 통해 '스무딩 오퍼레이션(미세조정)'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20일도 하락세로 출발해 한때 연저점에 가까운 1,054.9원까지 내렸지만, 당국의 개입에 대한 경계감에 소폭 반등한 채 장을 마쳤다.
시장에선 환율이 더 내려 연저점을 하향 돌파하면 당국이 대대적인 공동대응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외환당국이 이처럼 1,050원대 중반 사수에 주력하는 데 대한 시각은 엇갈린다.
전승지 삼성선물 연구원은 "2011년 이후 꽤 장기간 1,050~1,200원 사이 박스권에서 원ㆍ달러 환율이 움직였기 때문에 1,050원에 이르면 많은 참가자들이 달러 매수로 방향을 바꾼다"면서 "이 상황에서 예상 외로 하단이 뚫리면 엄청나게 많은 '달러 팔자' 물량이 쏟아져 나오므로 1,050원 선을 방어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수출 기업들도 아우성이다. LG경제연구원은 최근 원화가 10% 절상되면 수출이 5% 감소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하고,"국제적인 갈등을 가져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외환시장 개입을 적절히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반면 속도를 늦추는 선을 넘어 '1,050원 방어'에 지나치게 집중할 경우 오히려 잃는 것이 많을 수 있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참여정부 당시 1,000원 이하 환율에서도 수출이 크게 타격을 받지 않았고, 연기됐더라도 언젠가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가 시작되면 어차피 글로벌 자금 흐름이 변화할 수도 있는데 1,050원 사수에 모든 것을 걸 필요는 없다"면서 "정부가 한 방향으로 베팅을 유도하는 것은 시장에 공정하지도 않으며, 그 선이 깨졌을 때 후폭풍도 크다"고 지적했다. 전 교수는 "내수 부진에 의한 경제침체가 심각한 상황에서 수출 대기업에 사실상 보조금을 주는 고환율 정책을 지속해야 하는지도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당국이 강력한 개입 의사를 표명하는 것이 국제적인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지난달 31일 미국 재무부가 환율보고서에서 우리나라의 시장 개입에 대해 강력히 경고하자 정부 당국자는 "우리는 우리 갈 길을 가는 것"이라고 잘라 말한 바 있다.
한 경제 전문가는 "막대한 외환보유액과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우리가 개입 사실이나 규모 등을 공개하지 않은 채 빈번히 환율에 개입하는 것은 국제적 비판을 부를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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