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얄궂은 운명이다. 2003년 현대캐피탈 유니폼을 입은 뒤 소속팀과 국가대표를 오가며 최고의 거미손으로 불렸다. 그러나 올 시즌을 앞두고 여오현(35ㆍ현대캐피탈)의 자유계약선수(FA) 보상 선수로 라이벌 삼성화재 유니폼을 입어야 했다. 상처도 받았고 자존심도 많이 상했다. 절치부심한 이선규(32ㆍ삼성화재)가 반드시 팀의 7연패를 이끌겠다고 각오를 다지고 있다.
이선규는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의 센터다. 2005년 V리그 출범 이후 4차례 블로킹왕(2005, 2005~06, 2007~08, 2008~09시즌)에 올랐다. 센터로서 갖춰야 하는 빠른 속공과 정교한 블로킹은 이선규의 전매특허였다.
그러나 최근 2시즌 동안 부상 등이 겹치며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2011~12, 2012~13시즌 각각 세트당 블로킹 개수가 0.451, 0.496개에 그치며 데뷔 후 처음으로 0.5개를 넘지 못했다. 주변에서 기량이 예전 같지 않다는 평가도 들었다.
이선규는 지난 6월 신치용 삼성화재 감독의 선택을 받아 새롭게 유니폼을 바꿔 입은 뒤 입술을 깨물었다. 지난달 9세 연하의 신부와 결혼에 골인하며 책임감도 커졌다. 새로운 환경 속에서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는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됐다. 이선규는 "팀을 옮긴 것이 새로운 계기가 되었다"며 "신인 때의 마음으로 돌아간 것 같다"고 강조했다.
이선규는 지난 19일 우리카드와의 경기에서 블로킹 2개를 추가하며 남자부 최초 650블로킹을 달성했다. 팀의 3-0 완승과 함께 축하 받아야 하는 기록이었지만 오히려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개인 기록에 연연하기 보단 팀 승리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앞섰다.
삼성화재는 7개 구단 가운데서도 훈련 강도가 높기로 유명하다. "훈련 만이 정답"이라는 신 감독의 지론처럼 많은 훈련양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는 것이 삼성화재가 6연패를 달성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이선규도 처음에는 낯선 훈련 환경에 근육통을 달고 사는 등 힘들었지만 묵묵히 버텨냈다. 그는 "은퇴 전에 다시 한번 우승을 해보고 싶다. 올 시즌이야말로 우승할 수 있는 적기인 것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선규는 오는 24일 대전충무체육관에서 친정 팀 현대캐피탈을 상대로 경기를 치른다.
이재상기자 alexe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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