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 처음 배우는 베이스기타도 정말 재미있고, 제 삶 자체가 180도 바뀌었어요." 전남 광양시의 항만하역업체인 대주기업에서 화물운송 업무를 하는 최주성(34)씨의 목소리에는 에너지가 넘쳤다. 주위에서 최씨를 부러워하기 시작한 건 지난해 11월 회사의 교대제가 바뀌면서부터다. 2조2교대 때는 하루 12시간씩 열흘간 일하고 단 하루를 쉬었고, 한 달에 3번 근무 조가 바뀌는 날에는 24시간 연속 근무를 했다. 하지만 3조2교대가 도입되면서 6일 일하고 3일은 쉴 수 있게 됐고 24시간 근무도 사라졌다.
예전부터 음악을 좋아했지만 시간이 없어 배울 엄두를 못 냈던 최씨는 사내 동호회인 대주밴드에 가입했다. 베이스기타 배우기에 흠뻑 빠진 그는 다음 달 회사 송년회 때 처음으로 공연을 할 예정이어서 요즘엔 퇴근만 하면 학원으로 달려간다. 2주 전엔 네 살짜리 딸을 위해 대전에 있는 동물원에 다녀왔다. 예전엔 꿈도 못 꿨던 가족여행을 한 달에 2,3번씩 다니다 보니 엄마만 찾던 딸이 이젠 아빠에게도 곧잘 온다.
회사에선 총각 동료들의 표정이 특히 밝다. 최씨는 "나는 2조2교대 때 연애할 시간이 없어서 엄청 힘들게 결혼했는데 이번 달에만 회사에서 3명이 결혼하는 등 결혼이 줄을 잇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주기업이 지난달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직원의 84%가 새 교대제에 만족한다고 답했고, 배우자와 부모의 만족도도 82%, 98%에 달했다.
이처럼 장시간 근로를 깨뜨리면 가장 먼저 노동자의 삶과 기업 문화가 달라진다. 생산성 향상과도 무관치 않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독일 네덜란드 등 연간 실근로시간이 1,600시간 미만인 국가 대부분은 노동자 1인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이 50달러가 넘는다. 반면, 우리나라 멕시코 등 1,800시간 이상 장시간 근로 국가들의 생산성은 30달러도 안 된다.
근로시간 단축의 일자리 창출 효과는 일률적으로 전망하기는 어렵다. 기업마다 인력 전환배치, 노동강도 강화, 설비 투자, 공장 해외이전 등 근로시간 단축에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노동연구원이 OECD 국가의 2000~2010년 연간 근로시간과 고용률의 상관관계를 연구한 결과 근로시간 100시간 감소 시 고용률이 1.8%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등 근로시간 단축이 고용 창출로 이어진다는 연구 결과도 적지 않다. 특히 우리나라는 교대제 중 주야 2교대가 자동차 산업의 90.7%, 전 산업의 63.5%에 달할 정도 비중이 높아 이를 3조2교대 등으로 바꾸면 새 일자리가 생길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OECD 국가 중 연간 실근로시간이 1,800시간 이상인 국가들은 대부분 고용률이 65% 미만이지만 1,600시간 미만인 국가들은 75%가 넘는 등 근로시간이 짧을수록 고용률이 높다.
전문가들은 장시간 근로 단축을 우리나라 노동시장 혁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외환위기 때 유한킴벌리가 정리해고 대신 4조 근무제를 도입해 1인당 근로시간을 줄였을 때 생산성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직원들이 여유시간에 교육과 훈련을 받으면서 오히려 이윤이 증가했다"며 "장시간 노동이 비정상이라는 것을 깨닫고 근로시간 단축을 일터 혁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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