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가격이 하락하자, 미래에 불안을 느낀 사람들이 교육비, 식료품 같은 필수품 소비까지 줄이고 있는 것이 통계를 통해 확인됐다. 경제전문가들은 일부 대기업의 수출호조로 가려져 있지만, 소비부분에서 전례 없이'디플레이션 심리'가 확산되고 있다며 조속한 대책이 없으면 자칫 장기침체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19일 발표된 '2013년 가계금융ㆍ복지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구 평균 소득은 지난해 4,475만원으로 전년(4,233만원) 보다 5.7%(242만원) 증가했다. 하지만 평균 소비지출은 2,307만원으로 전년(2,302만원)에 비해 0.2%(5만원) 증가하는데 그쳤다. 같은 기간 평균 부채도 369만원(5,449만원→5,818만원) 늘어났다.
주목할 만한 점은 가계의 씀씀이 줄이기가 통상적 한계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극심한 불황에도 지출이 좀처럼 줄지 않는 식료품 지출이 5%(751만원→711만원) 넘게 줄었고, 우리나라의 유명한 자녀 교육열기가 무색하게 교육비 지출도 3%(349만원→339만원) 가까이 줄었다. 신관호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소득과 부채가 함께 늘면서, 소득이 늘어난 것에 비해 소비가 확실히 덜 늘었다"며 "가계 소비 위축은 내수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소비가 위축되면서 지난해 하반기부터 물가상승률은 1%대 내외에 머물러 있다. 이러한 물가 움직임은 외환위기 여파가 극심했던 1999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특히 최근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두 달 연속 0%대를 기록해, 경기 침체로 물가가 하락하는 디플레이션 우려마저 커지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소비자 물가상승률뿐 아니라 생산자 물가상승률, 실물자산 가격 움직임들이 디플레이션에 빠졌던 다른 나라의 거시경제 지표와 매우 유사한 형태로 움직이고 있다"며 "한국 경제가 올해 상반기부터 사실상 디플레이션 상태에 돌입한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디플레이션이 현실화할 경우 우리 경제가 장기 저성장의 늪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도 나온다. 오정근 아시아금융학회 회장은 "디플레이션과 자산가치 하락이 결합된 '부채 디플레이션' 가능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며 "아파트와 같은 실물자산 가격은 하락하는 반면 가계 부채는 계속 증가하고 있는 현상이 바로 그 전조현상"이라고 지적했다. 오 회장은 "가계에서 식료품과 같은 필수재 소비까지 줄이고 있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신호"라며 "특히 많은 경제학자들이 부채디플레이션을 장기저성장의 원인으로 꼽는 만큼 이에 적극적인 정책 대응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한국은행 등 정책 당국은 디플레이션 가능성을 일축한다. 일반인들이 기대하는 물가상승률 수준(기대인플레이션)이 3% 정도로 높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이에 대해 성 교수는 "일반 시민들의 체감물가 지수가 높은 것은 실제 물가가 올랐다기 보다는 실질 소득이 사실상 감소했기 때문"이라며 "일본의 경우에도 장기저성장에 빠지기 직전까지도 기대인플레이션이 낮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부에서는 공공요금 인상을 통해 물가를 끌어올리겠다는 얘기가 있는데, 이는 서민 고통만 가중시킬 뿐"이라며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등 국제경제 상황을 고려해 금리 인하와 같은 과감한 통화정책을 써야만 디플레이션 우려를 잠재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수회복과 가계 소득을 늘리기 위한 정책의 필요성도 제기 됐다. 오 회장은 "가계의 순자산이 늘어야 소비도 살아난다"며 "단기적으로는 부동산 거래를 정상 수준으로 회복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통해 가계 순자산이 증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내수를 살리기 위해서는 서비스 산업 활성화가 가장 중요하다"며 "서비스 분야에 대한 규제 완화와 투자 확대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동현기자 na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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