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생활 20년 동안 이런 편지를 준비한 것은 처음입니다."
미래창조과학부의 한 관계자가 한숨을 쉬며 말한 이 편지는 최문기 장관 명의로 19일 발송된 '단말기 유통구조개선법(단말기법) 관련 일부 제조사에 대한 당부'라는 긴 제목의 문건이다. 엄밀히 말하면 편지라기 보다는 공문인데, 최 장관은 이날 삼성전자 LG전자 팬택 등 국내 휴대폰 제조사 대표들에게 발송했다. 요지는 "사실 왜곡을 중지해달라"는 것이었다.
미래부 장관이 이례적으로 업계 대표들에게 편지에 가까운 공문을 보내게 된 건 단말기법과 관련된 뜨거운 논란 때문이다. 이동통신사 보조금은 물론 휴대폰 제조회사들의 판매장려금까지 모두 공개하고 규제하겠다는 것이 이 법의 골자인데, 휴대폰 제조업체들은 이 법이 통과되면 영업비밀이 노출돼 해외영업차질은 물론 결국 규제 밖에 놓여있는 외국업체들에게만 좋은 일이 될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미래부와 방송통신위원회는 18일 합동기자회견까지 열어 제조사들의 주장을 반박했다. '사실왜곡' '침소봉대'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제조업체들을 강하게 비난했다. 그리고 이날 "사실관계를 충분히 인지하고 협의를 지속하는 과정임에도 반복적으로 왜곡된 주장을 하는 것은 건전한 산업 발전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국민의 혼란만 가중시킬 수 있으니 국민가계 통신비 경감에 동참해달라"는 절반은 경고성, 절반은 협조를 구하는 서한을 발송하기에 이르렀다.
양측의 논리가 다 일리는 있다. 제조사와 이동통신사가 주도하는 휴대폰 시장을 소비자 중심으로 바꾸고 보조금을 받아가며 철새처럼 이동통신사를 갈아타는 단기이용자 아닌 오랜 기간 묵묵히 이용하는 장기이용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이 법의 시행이 꼭 필요하다는 게 미래부 입장이다. 새 휴대폰을 사는 사람들에게만 지급되는 보조금을 장기이용자들에게도 요금할인 같은 방식으로 골고루 혜택을 돌려주자는 게 이 법의 요지다.
큰 틀에서 본다면 단말기법의 취지는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보조금으로 뒤범벅이 된 지금의 이동통신시장 왜곡에는 정부책임도 크다. 느슨한 단속, 솜방망이 처벌. 어차피 그냥 두면 과열되는 게 시장의 본성인데, 무작정 업체들 책임만 탓하는 건 곤란하다.
법이 시행되더라도 업계 목소리에 좀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 법 통과 강행이 중요한 게 아니라, 업계의 자발적 동참을 유도하는 게 책임 있는 정부의 자세다. 제조사들이 우려하는 이중규제, 역차별, 영업자료유출 등에 대해선 이중삼중의 방지장치를 강구해야 한다.
최연진 산업부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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