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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11월 20일] 대화록 공개 신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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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11월 20일] 대화록 공개 신기록

입력
2013.11.19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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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전 대통령은 거침없고 승부욕도 강했다. 이런 기질로 국내 정치에서 경쟁자들을 압도했지만, 외교에서는 문제를 야기하기도 했다. 1994년 11월 필리핀 방문 때 YS는 마닐라 도착 다음날 아침 6시 조깅을 하려고 경호사령부 골프장에 들렀다. 라모스 대통령도 우의를 다지기 위해 나와 있었다. 그러나 오랜 세월 달리기를 해온 김 전 대통령은 라모스와 함께 뛰지 않고 한참 앞서 달렸다. 한 바퀴를 따라잡고 다시 앞섰다. 그러자 라모스가 멈췄다.

■ 1993년 11월 한미 정상회담 때 YS는 논의를 마치고 일어나는 빌 클린턴 대통령을 다시 앉혔다. 또 회담 중 클린턴의 말이 이해되지 않으면 "이 친구 지금 뭐라카노"라고 통역에 물었다. 통역은 그대로 옮기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판단, 적당히 둘러댔다. 그러나 미 국무부는 회담 후 정상 대화를 복기했다. YS의 거친 표현들을 알게 됐을 것이다. 1년 후 미국은 북핵 시설에 대한 폭격을 검토했다가 실행 직전 중단했다. 우리는 통보도 받지 못했다.

■ 미국이 북핵 시설 폭격을 상의하는 것은 물론 통보조차 하지 않은 것은 대북 기조가 냉탕, 온탕을 오간 우리 정부에 대한 불신 때문이었지만, 클린턴의 불쾌감도 한 몫 했다고 한다. 만약 미국이 폭격을 감행했다면 한반도는 엄청난 참화를 입었겠지만,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외교는 국가 간 이해와 힘을 바탕으로 하지만, 정상 간 신뢰도 중요하다. 한ㆍ필리핀 관계에서도 라모스의 섭섭함은 드러나진 않았지만 부정적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 그렇다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한 것은 어떨까. 다른 나라 정상들이 자기 말이 나중에 공개된다면, 할 말을 제대로 할까. 만약 박근혜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방위 제1위원장을 만난다면, 과연 속 깊은 얘기를 주고받을 수 있을까. 미국 등 대부분 나라들은 일정 기한을 정해 외교문서를 공개한다. 그러나 정상 간 대화를 있는 그대로 공개한 적은 없다. 대화록 공개는 우리의 첫 기록일 것이다. 그 후유증은 생각보다 깊고 길 것이다.

이영성 논설위원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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