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고위 공무원은 '부인'(denial)을 잘 한다. 결과는 분명히 있는데 원인도 없고 증거도 없다. 잡아떼거나 부인해 버리면 그만인 세상이 되었다. 그래서 진실과 정의가 무언지 조차 희미해지고 있다.(We live in a world of denial, and we don't know what the truth is anymore./Javier Bardem)
최근 어느 기자가 전임 대통령에게 다가가 집요하게 '전 국정원장에게 대선 개입을 지시했느냐'고 질문하자 그 전임 대통령은 동문서답식으로 '부지런도 하다, 허허'라고 응수했다고 한다. Mark Twain은 이런 경우를 두고 'Denial is not just a river in Egypt'라고 말했다. 이 말은 'The Nile is a river in Egypt'(나일강은 이집트의 강이다)란 문장 첫 부분의 동음이의어를 활용한 것이다. The Nile의 발음과 Denial과 흡사하기 때문에 언어적 유희처럼 보이는데 실제 의미는 '디 나일은 이집트에만 있는 게 아니군요'의 뜻으로서 '부인한다고 진실이 어디 갑니까'의 뜻이다. 평범한 문장으로 'You're in denial about that'처럼 말한다면 의미도, 전달력도 반감될 것이다. 촌철살인의 명구는 듣는 사람은 더욱 뜨끔할 것이다.
미국이 우방 국가 지도자들을 감청했다는 보도가 나온 뒤 독일 총리 여부 질문을 받고선 백악관 대변인은 'The United States is not monitoring and will not monitor the communications'라고 답변했다. '미국은 그러한 통신을 모니터링하지 않는다'는 뜻인데 과거에 그랬느냐는 핵심을 피하기 위해 현재 진행형만 쓴 것이 역력하다. 교묘한 denial이고 회피다. 과거에 Clinton대통령도 Monica Lewinsky와의 스캔들 얘기가 나오자 'I did not have sexual relations with that woman.'이라고 응수했다. 이렇게 말하면 성관계를 가진 적 없다며 깔끔해 보이지만 문제는 그 외의 다른 행위가 있었음을 숨긴 것이다. 이를 언론에서는 'non-denial denial'라고 표현했다. 부인하는 것 같지만 부인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일본이 과거의 잘못에 대한 사과 요청에 'Mistakes were made.'(잘못이 있었다)식으로 억지로 응했지만 이는 진실된 사과가 아니다. 일명 'non-apology apology'에 해당한다. 과거에 잘못이 있었다고 말할 뿐 이 문장엔 행위자의 주어가 없다. 일종의 고의성 회피일 뿐이다. 정치인들의 회피성 부인이나 사과는 그 표현 방식부터 이미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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