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회와 재계, 노동계가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환율조작을 금지하는 조항을 포함시킬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나섰다. 연내 타결을 목표로 추진되는 TPP 협상에 한국과 일본 등을 겨냥한 환율 문제가 걸림돌로 작용할 전망이다.
지난 13일 린지 그레이엄(공화당), 칼 레빈(민주당) 등 상원 중진급 의원들이 의회에서 경제학자, 산업계, 노동계 인사들과 토론회를 갖고 TPP에서 환율문제가 다뤄지지 않으면 향후 비준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참석한 경제학자들은 특히 일본 한국 등이 환시장에 개입, 자국 수출품 가격을 낮춰 미국과 유럽의 제조업체들에게 손해를 끼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프레드 버그스텐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소장, 시몬 존슨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가 한국과 일본을 외환시장 개입국가로 지목했다고 보도했으나 다음날 일본이 언급되지 않았다고 정정, 결국 한국만 환율 조작국으로 남겨뒀다. 워싱턴 소식통은 "미국 일각에서 자유무역협정(FTA)까지 체결한 한국이 환율시장에 개입, 미국 기업에 불이익을 입힌다는 지적이 있다"고 한국에 비판적인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앞서 미국 재무부는 환율보고서에서 한국 외환당국의 개입이 부적절하다는 강한 표현을 사용한 바 있다.
상원과 함께 하원 다수 의원들도 TPP에 환율조작 회원국을 응징할 수 있는 조항을 포함시킬 것을 촉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데이브 캠프 하원 공화당 세입위원장은 "무역협정에 환율조항을 넣을 지 진지한 찬반 토론을 가져야 할 때"라며 "정부가 정치ㆍ경제적으로 중요한 이 사안에 대한 약속 이행을 계속 미루면 TPP의 결론(비준)이 늦춰질 것"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FT)에 말했다. 비슷한 맥락으로 민주당 하원의원 151명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낸 서신에서 "의회에서 적절한 TPP 논의가 필요하다"며 행정부에 무역협상 촉진권한인 '패스트 트랙'을 부여하는 것에 반대했다. 이들은 "미국이 과거 잘못을 반복하는 또 다른 무역협정을 할 여력이 없다"고 밝혀, 한국 등과 이미 체결한 FTA에 부정적 시각을 드러냈다. 그러나 워싱턴 소식통은 "무역협정에 환율을 포함하는 것은 어렵다"며 "이 사안을 잘못 건드리면 협정이 힘들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이 TPP가입을 서두르지 않는 가운데 "미국은 한국의 가입을 희망하고 있으며, 한국은 아시아와 세계에 대해 교역조건을 주도할 수 있는 크리티컬 매스"라고 WP가 전했다. '크리티컬 매스'는 핵 연쇄 반응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최소 질량을 뜻하는 것으로 한국이 장차 TPP의 핵심 구성국임을 나타내는 말이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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