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옛 영화를 보다가 이상한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너무 많은 장면들이 모자이크 처리되어 눈에 거슬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기서 우리 몸의 은밀한 부분을 상상할지 모르지만, 모자이크 처리된 부분들은 영화 속의 인물들이 담배피는 장면들이었다. 그러고 보니 언제부터인지 영화에서든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든 담배피는 장면이 사라졌다. 예전에는 자연스럽게 즐겼던 담배가 이제는 우리 건강에 해로운 것으로 인식되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 모자이크 처리된 이미지로 분명해졌다.
담배가 어떤 사람들에겐 대단한 즐거움일 수 있다. 가슴 깊숙이 빨아들였다가 다시 허공에 내뿜은 연기가 그리는 동그라미를 바라보면서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나는 비록 담배를 피우지는 않지만 힘든 일을 끝내고 맥주를 곁들인 담배 한 대가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쾌락이라는 애연가들의 주장을 부정하고픈 생각은 없다. 그렇지만 "6.5초마다 한 명이 담배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는 흡연의 위험성에 대한 세계보건기구의 경고를 듣고서도 우리는 과연 흡연을 즐길 수 있을까? 건강에 해로울 뿐만 아니라 비이성적인 것으로 낙인찍힌 흡연은 이제 마치 범죄행위처럼 공공장소에서 추방당하고 있다.
나는 여기서 흡연 문제를 논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나의 머릿속에 맴돌고 있는 문제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우리는 과연 나쁜 것을 마주하지 않고 좋은 것만 추구할 수 있을까? 질병이 없는 건강은 과연 가능할까? 오늘날 우리는 건강한 것, 정상적인 것, 이성적인 것만을 추구하고 병적이고 비정상적이고 비이성적인 모든 것을 허용하지 않는 '금지 문화'에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매일매일 접하는 미디어는 그야말로 건강 강좌로 흘러넘친다. 이런 강좌로 교육을 받은 현대인들은 건강에 관한 전문가적 지식으로 무장하여 매순간 무엇이 몸에 좋고, 무엇이 몸에 나쁜지를 판단한다.
그런데 건강의 과잉은 새로운 형태의 병을 낳는다. 새로운 병은 우리의 몸에 해가 되는 외부의 세균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 안에서 발생한다. 지나치게 건강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삶을 즐길 줄 모른다. 일을 할 때도, 식사를 할 때도, 사랑을 나눌 때도 그들은 생각한다.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지를 끊임없이 생각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이 우리의 삶으로부터 병을 몰아내려고 무엇이 해로운지를 밝혀내면 낼수록 제거해야 할 나쁜 것은 더 많이 생겨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병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과연 건강한 것일까?
건강을 지나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또한 일을 하더라도 절대 과로하지 않고, 음식을 먹더라도 항상 칼로리를 조절하고, 사랑을 하더라도 자신의 몸을 먼저 생각한다. 그들은 어떤 일에도 몰입하지 못하고, 삶의 순간을 즐기지 못한다. 즐기는 사람들은 무엇이 좋고, 나쁜지를 따지지 않는다. 그것이 좋기 때문에 즐길 뿐이다. 그래서 향락은 만족과 같은 것이 아니다. 우리는 배고프지 않아도 저녁 식사를 친구와 함께 즐길 수 있다. 포도주를 마시는 것도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맛 때문에 즐기는 것이다. 이처럼 향락은 그 자체가 목적이다.
그런데 이렇게 우리에게 커다란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기호품들에는 물론 나쁜 특성들이 있다. 사람들은 흔히 기름진 음식, 커피, 그리고 담배와 술을 떠올린다. 우리가 즐기는 대부분의 기호품들은 향락의 대상으로서 좋지만 동시에 나쁜 점들을 갖고 있다. 현대의 건강과잉 사회는 이러한 기호품들에서 유해물질을 빼버리려 한다. 기름이 없는 음식, 카페인이 없는 커피, 니코틴이 없는 담배 그리고 알코올이 없는 술만 있는 잔치와 축제를 상상해보라. 건강할지는 모르지만 살 맛 나지 않는 삶, 그것이 과연 우리가 원하는 것일까? 모자이크 처리된 장면을 보면서 현대의 건강과잉사회가 오히려 사회를 건강하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는 의문이 든다. 모자이크 처리되는 부분들은 사실 인간의 삶에 가장 자연스러운 부분들인 것처럼 우리가 제거하고자 하는 것들이 본래 우리의 삶에 속해있는 것은 아닐까?
이진우 포스텍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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