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재미있게 본 영화가 있다. 소위 '먹방'으로 유명한 작품인데, 개봉 때 보지 못하고 뒤늦게 보게 됐다. 배우들의 찰진 연기부터 사투리 대사 하나하나까지 정말 시간가는 줄 몰랐는데 기억에 남는 대사 하나. "마! 앉아라. 내 운동했다." 영화 속의 위기 상황과 남자들의 허세가 맞물린 그 장면과 대사는 나에게 묘한 재미를 안겨 주었다.
영화에선 기죽지 않는 남자의 모습을 강조하는 대사였지만, 우리나라에서 '운동했다'는 말은 곧 전문 체육인을 양성하는 엘리트 체육을 경험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월드컵이나 올림픽이 열리는 동안의 우리 모습을 떠올려보면, 엘리트 체육이 국민사기 진작이나 통합의 기능을 가지고 있는 건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체육정책의 모든 지원이 엘리트 체육인 양성에 쏠리는 현재의 기형적인 구조가 정당한지에 대해선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국제대회 4강 진출 경험이 있다고 해서 세계 4위의 체력을 보유하는 건 아니듯, 간접적인 체육경험이 전반적인 국민의 체력이나 건강수준을 높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행히 내년도 정부예산안에 생활체육 지원사업이 포함돼 있다.
대표적인 생활체육 지원사업으로 국민체육센터 건립과 개방형 다목적 체육관 건립 두 가지가 꼽힌다. 먼저 국민체육센터 건립은 전국 시ㆍ군ㆍ구 당 1개소씩 수영장, 체육관, 체력단련장 및 체력측정실 등 생활체육시설을 설치해 국민의 건강 증진과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겠다는 것이다. 개방형 다목적 체육관 건립은 학교 부지에 학생과 지역주민이 함께 사용하는 실내체육관을 건립, 국민 체육복지 향상을 꾀하는 것이 취지다. 국민체육센터와 다목적 체육관 건립에 각각 524억원, 93억원의 예산이 배정돼 있다. 좋은 취지의 사업이니만큼 잘 진행이 되었으면 하지만, 추진 방법이나 기대 효과에 있어 명확하지 않은 점은 짚고 넘어갔으면 한다.
생활체육은 운동하려는 의지와 참여가 관건이다. 운동 의지를 북돋고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다양하고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끊임없이 제공해야 한다. 참여하고 싶은 프로그램이 없거나, 이용할 수 없는 시간에 프로그램이 개설된다면 좋은 시설을 갖춘 곳이라 한들 무용지물일 뿐이다. 국민체육센터 지원사업 추이 조사결과를 보면 시설은 늘지만 이용률은 하락하고 있다(113%→80%).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는 '생활체육 참여 실태조사'를 실시해 공공기관 주관의 체육활동정보 인지도와 프로그램 참여도를 연도별로 비교했다. 그 결과 2000년에 비해 체육활동정보 인지도는 32.9%에서 16.6%로, 프로그램 참여도는 30.5%에서 16.1%로 떨어졌다. 시설 확충 못잖게 활용에도 내실을 기할 수 있는 세부 프로그램에 대한 고민이 함께 이뤄져야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다. 하지만 세부 사업안에는 프로그램 개발이나 인력양성에 관한 내용은 없었다. 확충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셈이다.
반대로 다목적 체육관 건립사업은 시설 확보가 문제다. 여기서 시설은 존재로서의 시설이 아닌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시설을 말한다. 2012년 서울시민 체육시설 활용실태 조사에서 '체육 활동을 한다면 어떤 체육시설에서 하길 원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93.3%가 학교체육시설을 답했다. 허나 학교체육시설을 이용하는 비율은 30대가 10.6%, 40대 6.7%, 50대 8.8%에 불과했다. 그나마 개방하는 학교 체육시설 역시 특정단체의 독점이나 관리의 어려움 등을 이유로 사용시간에 제약이 있고 시민들이 마음 편히 이용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아무리 좋은 시설을 늘린다 한들 마음 편히 사용하지 못한다면, 이것이 바로 그림의 떡이 아니고 무엇일까.
언제든 사용 가능한 생활체육시설이 주변에 많이 늘어나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의 삶이 한층 건강하고 윤택해 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체육시설은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예술작품이 아니다. 시설만 늘려놓고 통계로 만족할게 아니라, 그 속에서 국민이 마음껏 체육활동을 즐기도록 하는 세심한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
신원기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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