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년 8월 남태평양 솔로몬군도 인근에서 존 F 케네디 해군 중위가 이끌던 초계어뢰정(PT-109)이 일본 구축함의 공격을 받고 침몰했다. 항복 대신 탈출을 선택한 26세의 케네디는 부대원들을 이끌고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다. 구명조끼 끈을 입에 물고 화상 입은 부대원을 끌면서 5㎞ 가까이를 헤엄쳤다. 천신만고 끝에 인근 섬에 도착한 케네디와 부대원들은 엿새 만에 뉴질랜드 군함에 구조됐다. 이 일로 수많은 훈장을 받은 그는 '어떻게 전쟁영웅이 됐느냐'는 물음에 "쉬웠다. 그들이 내 어뢰정을 반쪽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농담했다.
■ 22일로 사망 50주년을 맞는 케네디의 2남 2녀 중 장녀이자 유일한 생존 혈육인 캐럴라인 케네디(55)는 2008년 미국 대선 때 "아버지처럼 영감을 주는 대통령을 이제야 발견했다"며 오바마 지지를 선언했다. 힐러리와 오랜 인연을 맺어온 터라 파장은 컸다. 힘겹게 경선을 치르던 오바마는 그의 지지로 국면을 뒤집을 결정적 계기를 맞았다. 이 인연으로 오바마의 부통령 후보로 거명되고 뉴욕 상원의원에 도전하기도 했다. 변호사이자 작가로서 공직 경험은 없지만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케네디가의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 캐럴라인이 15일 첫 여성 주일대사로 부임하면서 미국과 일본 양쪽에서 흥분과 찬사가 터져 나온다. 케리 국무장관은 "오바마 대통령의 애정과 존경, 그리고 대통령의 귀를 가진 대사"라고 극찬했다. 일본은 한달 이상 걸리던 신임장 제정을 나흘 만에 마치도록 했고, 다음날 바로 아베 총리와의 식사 약속을 잡는 등 극진히 대접하고 있다.
■ 케리 장관이 캐럴라인 대사에게 한국과 일본의 중재를 특별히 당부했다고 한다.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도 "한일관계가 우리가 바라는 만큼 강력하지 않다"는 우려가 나왔다. 대통령을 전화로 불러낼 수 있는 힘 센 대사에 대한 바람이자 주문이다. 아버지가 2차 대전에 참전한 것은 일본의 진주만 공격 때문이었다. 일본과의 악연을 계기로 승승장구했던 케네디의 딸이 펼칠 일본외교는 어떤 것일지.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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