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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세한 연립주택'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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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세한 연립주택'을 보면서

입력
2013.11.18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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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대해 말이 많다. 민족사의 영욕과 파란이 중첩된 그 땅에 미술관을 짓기로 한 지 4년 만에 문화명소가 들어섰는데, 왜 말이 많은 것일까. 미술관은 지형에 맞춰 일련의 시설이 다도해처럼 분절된 형상으로 배치돼 있다. 특히 지하공간을 잘 활용해 다양한 대작 전시가 가능하게 했다.

초점은 그런 공간에 걸맞은 전시 내용과 운영 문제다. '2년의 기획기간'을 거쳤다는 개관전은 실망스러웠다. 다섯 가지 특별전 가운데 개관전의 핵심이라 할 '자이트가이스트(Zeitgeist)-시대정신'전에 대해서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전시 내용은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 7,000점 가운데 '시대정신'에 걸맞은 59점을 골라 내놓은 것이다. '시대정신'을 보여주는 신작을 제작토록 한 게 아니라 이미 갖고 있는 작품에 '시대정신'이라는 옷을 입힌 셈이다.

그렇게 했다 해서 시대정신이 드러나지 않거나 왜곡되는 건 아닐 것이다. 문제는 59점의 작가 39명 중 82%인 32명이 전시기획자와 같은 서울대 출신이라는 점, 작품 선정기준이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소장품의 다양성 부족이라는 지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시대정신이란 간단하고 쉬운 말이 아니다. 한 시대의 문화적 소산에 공통되는 이념이나 양식을 시대정신이라고 정의할 때, 지금의 시대정신이 무엇이라고 명확하게 한마디로 제시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광복 이후 지금까지 관류하는 시대정신을 미술작품을 통해 제시하기는 더욱더 어렵다.

그런데 '과거와 현재의 유기적 조화 및 교류로 역동적인 미래 창달에 이바지하겠다'면서 거창하게 미술관을 짓고도 왜 새롭고 의미 있는 기획을 하지 않고 '날탕'으로 거저 먹은 것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정권 교체기의 문제와 '쉽게 편하게'라는 행정적 고질 때문이 아닌가 싶다.

국군기무사가 있던 자리에 이명박 정부가 미술관을 조성키로 한 것은 2009년 1월이었다. 최종 설계작이 선정된 게 2010년 8월이었고, 2011년 6월 15일 착공, 올해 6월 28일 완공된 지 근 5개월 만에 개관을 했다. 겨우 2년 만에 완공했으니 모델로 삼았다는 파리 퐁피두센터의 6년에 비하면 그야말로 초고속 토목공사였다. 올해 2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임기 만료 전에 완공하려고 무리한 탓인지 지난해 8월엔 공사장 화재로 4명이 숨지는 사고까지 났다.

이 시점에 개관전을 기획한다면 박근혜 정부가 강조하는 '문화융성'이나 이와 관련된 무언가를 주제로 내세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화정책이 소통 공공성 일관성 부재에다 공보적 기능으로 전락했다는 평가를 받은 이명박 정부의 말기에 그럴싸한 주제를 내세우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게 아니라면 순전히 상상력 기획력 빈곤 탓일까. 그것은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다. 그런데 특정 작가의 작품을 배제하라는 권력층의 외압이 있었다는 주장(한국일보 11월 18일자 2면)까지 나왔으니 더욱 혼란스럽다.

'시대정신'전에서 가장 눈에 띈 작품은 황인기 성균관대 교수의 2002년 작 '세한 연립주택'이었다. 추사 김정희 '세한도'의 집과 나무를 합성수지에 아크릴 채색으로 15개나 제작해 3단으로 앉힌 작품에서는 자유로운 발상과 유머감각을 먼저 읽을 수 있다. 잘 알다시피 세한도는 집 한 채와 나무 네 그루를 통해 선비의 고고한 지조, 학문과 예술의 일치를 보여준 명작이다.

그런 집이 여러 채 모여 있으면 한결같은 지조와 예술의 깊이가 더해질까? 오히려 그 반대다. 세한도의 집은 하나라야 세한(歲寒)의 의미가 살아난다. 벌써 11년 전에 제작된 작품이 판박이 연립주택과 같은 문화행정, 점점 더 기업 후원에 기대어 침윤되는 예술정신을 비꼬면서 우리 미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통렬한 풍자로 읽히니 유감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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