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시정연설에서 정국 현안에 대해 밝힌 입장은 미흡했다. 시국 인식이나 해법이 꽉 막힌 정국을 풀 실마리가 되기에는 충분치 않았다. 우선 "대선을 치른 지 1년이 되어가고 있는데 지금까지 대립과 갈등이 계속되는 것에 대해 대통령으로서 매우 안타깝다"는 언급은 방관자적 인상을 주었다. 대립과 갈등의 원인인 국정원 댓글 사건부터 채동욱 전 검찰총장 낙마, 윤석열 여주지청장 수사팀장 배제,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에 이르기까지 박 대통령과 무관한 것은 없다. "안타깝다"는 표현은 마치 지금의 혼돈 국면이 정치권만의 책임으로 치부하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어 적절치 않았다.
국정원 댓글 사건 등 국가기관의 선거개입 의혹이 잘못된 일이라는 점을 명백히 밝히지 않은 것도 아쉬웠다. 대신 "사법부 판단이 나오는 대로 책임을 물을 일이 있으면 응분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으나 사안의 엄중함이나 국민적 공분에 비춰 너무 느슨한 접근이었다. 국정원의 일탈을 질타하고 자체 감찰을 시키겠다는 식으로 보다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언급을 했어야 했다.
진전된 내용은 "최근 야당이 제기하는 여러 문제들을 포함해서 무엇이든 국회에서 여야가 충분히 논의해 합의점을 찾아주면 존중하고 받아들이겠다"는 대목이다. 특검이나 국정원개혁특위 등을 '여야가 합의하면'이라는 조건을 붙여 수용한 셈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아무리 수용하려 해도 '여야 합의'라는 조건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공허한 약속에 그치고 만다. 민주당에서 "미지근한 물로 밥을 지을 수 없다"(김한길 대표), "카게무샤(대역)를 내세워 불통을 택했다"(전병헌 원내대표) 등의 부정적 반응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박 대통령의 메시지가 진정성을 가지려면 새누리당이 움직여야 한다. 당장 여야 접촉이 이루어지고, 특검 등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부터 요지부동이다. 최 원내대표는 입만 열면 국회선진화법의 헌법 소원을 강조하고 각종 회의에서 대야 비난의 선봉에 서고 있다. 이런 식으로는 정국이 정상화하기 어렵다. 이왕 박 대통령이 여야 논의를 주문한 만큼 새누리당은 그 동안의 전투모드에서 벗어나 야당과의 대화에 나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박 대통령의 시정연설이 진정성 있는 용단으로 평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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