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지갑에 고이 모셔져 있거나 굳이 휴대하지 않아도 큰 불편이 없지만 한때는 사용빈도가 참으로 높았다. 은행계좌를 만들거나 경찰의 불심검문에 응할 때는 물론이고 술을 먹거나 책을 빌릴 때, 그리고 때로는 당구치고 돈 없을 때도 사용 가능했던 신분증명서가 바로 주민등록증이다.
대한민국 성인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소지하지 않으면 여행도 쉽지 않았고 심지어 범죄자로 취급 당하기까지 했던 주민등록증이 최초로 등장한 것은 1968년 11월 21일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1호와 2호를 발급받으면서부터 시작됐다.
68년 1월 김신조를 비롯한 북한의 무장게릴라가 휴전선을 넘어 청와대 뒷산까지 잠입한 1ㆍ21 사태가 발생한 후 정부는 간첩식별과 주민통제를 위해 주민등록증제도를 서두르기 시작했다. 그 해 12월까지 군인과 수감자를 제외한 1,600여만 명의 성인남녀가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았고 유신시절인 75년부터는 경찰관이 요구할 경우 반드시 제시해야 한다는 강제규정까지 더해졌다.
박정희 대통령 내외가 발급받은 번호는 110101-100001과 110101-200002로 앞 6자리는 지역을 표기했고 뒤 6자리는 개인번호였다. 앞 번호 11은 서울, 01은 종로구, 끝 01은 청와대가 소재한 자하동을 나타내는 뜻이며 뒷부분 숫자는 등록한 사람 순서로 번호가 부여됐다. 68년 11월 21일 오전 11시 박정희 대통령은 부인 육영수 여사와 함께 서울 종로구 자하동사무소를 방문해 정종실 동장으로부터 주민등록증을 건네 받고 기자들을 향해 이를 들어 보였다. 1호 주민등록증이 발급된 것이다.
숫자 12개로 이뤄진 주민등록증번호는 75년, 앞자리에 생년월일이 들어가고 뒤는 성별과출생 지역을 조합해 모두 13자리로 구성되도록 일제 갱신됐다.
주민등록증 이전에도 신분증은 있었다. 조선 태종 13년에 도입된 호패제도가 우리 역사상 첫 신분증이었다. 16세 이상이 소지했던 호패는 신분과 직업을 명확히 하고 군역과 노동력 징발을 위한 목적으로 도입됐고 호패제도가 유명무실해진 후, 1950년에야 18세 이상 국민들에게 시ㆍ도민증이 발급됐다. 여기에는 본적과 주소는 물론 직업, 신장, 체중, 혈액형까지 기록돼 그야말로 신상명세서나 다름없었다.
68년부터 발급된 주민등록증은 지금과 같은 가로 형태의 플라스틱이 아니라 비닐로 코팅된 세로 모양이었다. 정부는 96년부터 IC칩이 부착된 전자주민카드로 바꿔 발급하려 했으나 사생활 침해 논란으로 아직 시행되지는 않고 있다.
만화 주인공 둘리와 하니도 지방자치단체가 부여한 고유의 주민등록번호를 갖고 있다. 830422-1185600과 850101-2079518로 세상에 첫 선을 보인 날을 기념해 만들어졌다.
손용석기자 st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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