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학교 인근 200m 이내의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 안에 호텔 등 숙박시설을 지으려는 업체는 승인권을 지닌 학교환경정화위원회에 사업계획을 설명할 기회를 얻게 된다. 지난 9월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열린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논의된 투자활성화 대책에 따른 것이다. 인근 학교의 학습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무산됐던 대한항공의 경복궁 옆 7성급 호텔 건립의 길이 열린 셈이다. 그러나 학교 주변 유해시설의 규제 완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장우삼 교육부 학생건강지원과장은 "숙박시설이 학교 인근에 건립을 원하면 해당 사업체가 학교환경위생정화위원회에서 직접 사업계획을 설명할 수 있도록 하는 '학교환경정화위원회 운영방안 개선안'을 만들었다"며 "내년부터 시행할 예정"라고 18일 밝혔다.
현행 규정에 따르면 호텔, 여관, 여인숙 등 숙박시설은 정화구역 절대구역(학교 출입문에서 직선거리 50m 이내)에는 건립이 불가능하고, 상대정화구역(200m 이내)에는 지역교육청 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건립할 수 있다.
교육부가 마련한 개선안에 따르면 교육감 또는 교육장은 정화구역 내 숙박시설을 설치하려는 자(민원인)가 금지행위ㆍ시설 해제 신청을 하는 경우, 학교환경위생정화위원들에게 사업추진계획에 대한 설명이 필요한지 물어야 한다. 또 민원인이 사업 개요, 숙박시설 주변 교육환경보호계획 등을 담은 서면계획을 제출하고, 심의 때 위원들에게 직접 설명할 수 있도록 했다.
이번 개선안은 대통령의 뜻에 따라 마련됐다. 박 대통령은 지난 9월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학교 인근에 들어서길 바라는 호텔의 애로사항을 점검하고 개선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이날 국회 시정연설에서도 박 대통령은 "관광진흥법이 통과되면 약 2조원 규모의 투자와 4만7,000여개의 고용이 창출된다"며 계류중인 법안 처리를 촉구했다. 관광진흥법 개정안은 유해시설이 없는 경우 교육청의 승인 없이도 관광호텔 건립이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장 과장은 "민원인의 입장에서 직접 건립 계획 설명을 할 기회조차 없어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있었고 대통령이 주재한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도 교육부의 개선 사항으로 포함됐던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숙박시설 수요가 많은 지역을 관할하는 서울중부교육지원청, 부산남부교육지원청, 인천남부교육지원청은 다음달 20일까지 개선안에 대한 시범 운영에 들어갔다. 이 가운데 서울중부교육지원청은 대한항공이 7성급 한옥호텔 건립을 추진했던 지역 내 학교들은 담당하는 곳이다.
대한항공 측은 교육부의 개선안과 관련해 "호텔을 건립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게 돼 환영한다"며 "면밀한 사전 준비를 한 뒤 시기를 검토해 금지시설 해제 신청을 하겠다"고 밝혔다. 대한항공은 2008년 옛 미국 대사관 직원숙소 부지를 사들여 관광호텔과 공연장, 갤러리 등을 갖춘 복합문화시설을 조성하려 했지만, 주변에 덕성여중ㆍ고, 풍문여고 등이 있다는 이유로 서울중부교육청의 승인을 얻지 못했다. 이후 대한항공은 중부교육청을 상대로 2년에 걸쳐 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하병수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변인은 "대한항공이 지으려는 호텔은 숙박시설 뿐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오락시설도 있다"며 "대통령의 한마디와 기업의 논리에 따라 교육부가 학교 주변에 유해시설이 들어설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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