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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민낯 돌아보는 근원적 질문 던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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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민낯 돌아보는 근원적 질문 던지고 싶었다"

입력
2013.11.18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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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호 감독은 한국에서 가장 주목 받는 젊은 감독 중 하나다. 첫 장편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으로 2011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감독조합상 등 3개의 상을 받았다. 이 영화는 그해 개봉해 1만 9,340명이 봤다. 세 친구의 잔혹한 과거를 돌아보며 한국 사회의 구조적 계층 갈등을 드러낸 영화로선 예상 밖 흥행 성과라는 평가가 따랐다. '돼지의 왕'은 지난해 칸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에도 한국 애니메이션으로는 처음 초청됐다.

연상호 감독이 두 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사이비'를 21일부터 선보인다. '돼지의 왕'이 주었던 발견의 기쁨은 흥분으로 이어질 듯하다. 연 감독은 기독교를 매개로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들추며 과연 믿음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올해 한국영화계가 낳은 주요 성과라 할 수 있는 이 영화는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장편 애니메이션 부문 예비 후보에 올라 있다. 연 감독을 최근 서울 예장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사이비'의 배경은 한 수몰 예정 지구다. 주민들의 보상금을 노린 가짜 교회 장로 최경석(목소리 연기 권해효)과 그를 어쩔 수 없이 돕는 목사 성철우(오정세), 이들의 사기 행각을 고발하려는 마을의 난봉꾼 김민철(양익준)이 이야기를 떠받치는 주요 축이다. 민철의 딸 등 강한 믿음을 지닌 주민들이 민철을 철저히 따돌리고 도리어 경석 일당을 따르면서 벌어지는 파국을 그렸다. 종교, 특히 기독교에 있어선 과민하기 마련인 한국 사회에서 다루기 쉽지 않은 이야기다.

연 감독은 "민감한 반응을 전혀 예상치 못했다"고 말했다. "주변에 모태 신앙을 지닌 친구들도 예상보다 덜 세다 할 정도의 이야기"라고도 했다. 영화의 출발도 기독교 비판을 염두에 둔 게 아니었다. 연 감독이 "노무현 정권 말기 TV로 한미자유무역협정(FTA) 토론을 보고 착안한" 애니메이션이다. "아무리 맞는 말을 해도 화법 때문에 대중에 어필하지 못하는 한 패널의 모습을 보고" 이 이야기를 떠올랐다.

교회 장로가 사기를 주도하고 4대강 사업을 연상시키는 수몰이 주요 소재란 점에서 이 영화의 메타포는 지극히 시사적이다. "정치적 내용이나 종교적 소재를 그대로 대입하기보다 다양한 층위로 영화가 보이길 원했다"는 연 감독은 "기독교 비판 영화 또는 이단 척결 영화로 보일까" 우려했다. 그래서 "교회 열심히 다니는" 자신의 종교 생활 공개를 꺼리기도 했다.

"'돼지의 왕'은 계급과 계층에 대한 이야기인데 학원폭력 영화로 많이 오독됐어요. 국무총리가 참석한 학원폭력 간담회까지 불려갔다니까요. 이번 영화로 이단 척결 간담회, 그런 자리 나오라 할까 좀 걱정돼요(웃음)."

'사이비'는 여러 면에서 '돼지의 왕'보다 진화했다. 배우들의 목소리 연기 80%가량을 미리 녹음하고 거기에 맞춰 그림을 그렸다. 인물들이 말하는 모습과 행동이 좀 더 자연스럽게 보이는 이유다. 만화 '습지 생태 보고서' 등으로 유명한 최규석 작가가 시나리오를 함께했고, 개성 넘치는 각 캐릭터의 모습들도 만들어냈다. 연 감독은 "'돼지의 왕' 때 생각만 하고 돈이 없어 못한 기술적 아이디어를 많이 보여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이비'의 제작비는 3억 8,800만원이다.

연 감독은 비주류의 극단에 서 있다 할 수 있다. 가뭄에 콩 나듯 장편 애니메이션이 나오는 한국에서 독립영화 제작 방식으로 사회 비판적 내용을 다루고 있다. 그의 애니메이션들은 장르로 따지면 스릴러다. '애니메이션=가족영화' 등식이 성립하는 국내에서 그는 비주류 중에 비주류라 할 만하다. 다음 영화도 노숙자와 가출 청소년의 하룻밤 이야기를 강한 스릴러로 그려낼 '서울역'이다.

"저도 동물들이 캐릭터로 등장하는 오락성 강한 가족용 애니메이션 아이디어는 여럿 있어요. 제가 제안을 해도 투자사가 쉽게 OK를 하지 않아요. '돼지의 왕'으로 시작해 '사이비'까지 하니 제가 이렇게 갈 수 밖에 없단 생각이 들어요. 아마 조금씩 다른 영역으로 넘어 갈 수 있을 듯해요."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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