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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이야기/11월 19일] 훔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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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이야기/11월 19일] 훔쳐보기

입력
2013.11.18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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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렌즈를 샀다. 창 바깥의 초등학교 지붕 공사를 지켜본 후였다. 낡은 기와를 걷어낸 지붕 한쪽에는 차근차근 새 마감재가 덮이고 있었고, 시멘트가 드러난 한쪽에서는 안전모를 쓴 인부가 오래 비질을 하고 있었다. 그 풍경이 파란 하늘과 잘 어울려 가까이서 구경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물리적 거리도 거리려니와, 대놓고 빤히 지켜볼 수 없는 것들이 있는 법이다. 창밖을 보고 있자면 가끔 그런 장면이나 모습에 눈이 머문다. 벌을 서는 듯 계단참에 혼자 나와 손을 들고 있는 아이. 헛, 헛, 기합을 넣어 대검을 공중에 휘두르며 작은 숲에서 검도연습을 하는 남자. 망원렌즈를 산 건, 그러니까 가깝게, 몰래, 훔쳐보고 싶기 때문이었다. 훔쳐보기는 말 그대로 일종의 도둑질이다. 그걸 알면서도 솔직히 유혹을 느낀다. 예전에 살던 아파트는 좁은 간격을 두고 건너편 동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었다. 밤이 되면 불을 밝힌 몇몇 집의 일상이 훤히 들어왔다. 속옷만 입고 돌아다니는 여자. 역기를 드는 남자. 엄마에게 야단맞는 아이들. 저쪽에서도 이쪽이 다 보이겠지 싶어 우리집 커튼만은 꽁꽁 여미면서도 나는 종종 건너편의 삶들을 건너다보곤 했다. 어떤 영화의 주인공은 이런 식으로 훔쳐보기를 일삼다가 살인사건도 해결하던걸 뭐, 하는 변명 아닌 변명을 하면서.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다른 집의 실내가 보이지 않는 구조라 다행이다. 새 렌즈로 못된 유혹을 느낄 일은 없으니 말이다.

신해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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