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정함에 대한 가치 판단은 대개는 부정적이다. 질풍노도의 10대는 어서 자라나 가치관의 닻을 내려야 하고, 기약 없는 미래는 각종 약속을 기반으로 단단한 바위 위에 서야 한다. 그러나 완성된 가치관은 다시 수정하기 힘들고 안정된 미래에서는 고뇌 어린 노래나 어떤 시도 기대할 수 없다. 무르익지 않은 것들만이 가진 힘. 건축에도 이 같은 가치가 적용될 수 있을까?
지금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제7전시실에는 특별한 설치물이 전시돼 있다. 뉴런 다발 같기도 하고 천사의 찢어진 날개 같기도 한 그것은 관람객의 손길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손가락을 갖다 대면 불이 켜지고 촉수처럼 늘어뜨려진 와이어가 바짝 움츠린다. 움직이는 식물 같기도 하고 굼뜬 동물 같기도 한 이 설치물은 인간의 몸이 외부 자극에 반응하는 모습을 건축 재료로 재현한 인터랙션 설치 조각 '착생 식물원'이다.
캐나다 워털루대 건축학과 교수이자 디지털 미디어 예술가인 필립 비슬리는 건축가, 엔지니어, 디자이너, 시인 등과 협업해 인체에서 일어나는 생체 반응을 건축에 도입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그가 꿈꾸는 것은 살아 있는 건축물. 인간의 움직임에 반응해 쪼그라들기도 하고 커지기도 하며 일시적으로 형태를 바꾸기도 하는 건물이다. 벽돌로 견고하게 쌓아 올린 구조체와 달리 유연함을 갖춘 이 건물은 필연적으로 구조적 불안정성을 동반하지만 이는 소통이 가능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비슬리는 미래에 인간과 건물 간 소통이 지금보다 훨씬 더 활발해질 것이며 그 핵심은 불안정성에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정말로 이런 건축물이 나올 수 있을까?
"이미 시작되고 있습니다. 가장 초기 형태로는 자동문이 있죠. 앞으로는 날씨가 더우면 건물이 자동으로 에어컨을 작동시킨다든지 알아서 블라인드를 내리는 기술이 등장할 것입니다. 일차원적인 소통을 넘어서 양질의 소통을 모색하는 쪽으로 진화하는 것이죠. 이를 위해서는 극도로 얇고 가벼운 물질을 여러 겹으로 겹쳐 만든 건축재가 필수입니다."
'착생 식물원'은 연구 중간 단계의 결과물을 전시한 것이지만, 여기엔 최신 이론과 기술이 집약돼 있다. 첫째는 건축적 패브릭. 고강도 아크릴에 열을 가해 얇게 편 뒤 이를 레이스처럼 직조했다. 천처럼 얇고 유연하지만 강도는 기존 건축 자재에 뒤지지 않는 소재다. 두 번째는 움직임을 감지하는 센서. 마이크로 프로세서가 인간의 움직임을 감지해 반응하는데, 수동적 반응에 그치지 않고 옆의 조각에 신호를 전달해 연쇄 반응이 일어나도록 한다. 수면을 손으로 살짝 저었을 때 물결이 멀리까지 퍼지는 것과 같다. 이 모든 기술의 최종 목표는 인간의 신진대사를 건축물 안에 재연하는 것이다. 비슬리 연구팀은 건축물을 생명체로 만들기 위해 자가 동력 장치를 실험 중이다.
"푸른색 플라스크 안에 들어 있는 식초가 구리와 반응해서 에너지를 생성합니다. 오렌지로 전구를 켜는 것과 같은 간단한 원리죠. 지금은 이것만으로는 부족해 외부 전기를 끌어 쓰고 있습니다. 연구가 진전되면 자체 동력만으로 움직일 수 있을 겁니다."
건물이 살아 숨 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소극적이지만 세심하게 인간의 반응을 살피는 건물이 있는가 하면 너무 적극적이어서 실수를 연발하는 서툰 건물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그 안에서 생활하는 인간의 태도도 바뀔 것이다.
"살아 있는 건축은 인간의 편리를 증진하기 위한 것만은 아닙니다. 사람의 명령에 복종하는 노예 같은 건물은 아무런 사유를 일으키지 못하죠. 나는 서구 문화 안에서 자랐고,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일방적이고 억압적인 소통 방식이 지난 세대의 산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건물과 소통하면서 우리는 지구의 순환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살아 있는 건물은 인간과 자연, 도로, 건물 등 지구를 이루는 모든 것들이 어떻게 하면 다같이 행복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게 할 것입니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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