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올해 3월 취임 이후 8개월 간 세 번이나 위기를 겪었다. 7월 일부 언론과 여당이 '경제 컨트롤 타워가 없다', '부총리가 보이지 않는다'고 비난하면서 첫 상처를 입었다. 현 부총리는 "(안 보인다는 사람들의) 안경을 닦아줘야 하나"라고 맞받아쳤으나, '곧 바뀌는 것 아니냐'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더 큰 위기는 8월 '세법 개정안 파동'이었다. 개정안은 4,000만~7,000만원 계층의 소득세 부담을 월 1만5,000원 가량 올리는 내용이었다. 일주일전 비공식 협의 때는 '우리가 원하던 내용'이라고 칭찬하던 민주당이 태도를 바꿔 '박근혜 정부가 서민 등골을 휘게 한다'고 공격했다. 예상을 깨고 박 대통령이 신속하게 원점 재검토를 지시하면서 또다시 경질설에 휘말렸다. 현 부총리는 10월 국정감사에서도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도 추궁을 받았는데, 고액 기부금에 대한 소득공제의 중요성을 유난히 강조하는 일부 언론의 집요한 공격도 받았다.
부총리를 흔들어 댄 논리의 대부분은 객관적 사실보다는 '존재감이 없다', '통솔력이 없다'는 등 다분히 추상적인 것들이었다. 그런데도 위기 때마다 '곧 단행될 개각에 부총리가 포함됐다'며 자천타천 후임자가 거론됐던 이유는 뭘까.
기재부 내부에서조차 불만이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10월까지만 해도 일부 국ㆍ과장급 간부 사이에서 부총리는 술자리의 대표 안주였다. 반주가 곁들인 저녁 식사에서 맥주와 소주가 섞인 잔이 두세 번 돌고 나면 불만이 터져 나왔다. '한국 경제를 이끌 비전이 없다', '통솔력이 없고, 타 부처 장악력이 없다', '외부 압력에서 부하들을 지키지 않는다'는 등 팩트(Fact)가 뒷받침하지 않는 '인상 비평'이 주류였다.
취기가 오르면 인상 비평은 99.9% 인사 비평으로 바뀌었다. "1급을 지낸 A선배가 이번에 얻은자리는 국장급도 안 가던 곳"이라거나, "B부처 퇴직자는 산하 공기업에 쭉쭉 내려가는데 기재부는 뭐냐"는 푸념이었다. 그랬다. 현 부총리의 '경제 비전 부재'는 퇴직자의 인생 2모작 일자리를 만들어 낼 능력의 부재, '타 부처 장악력 부족'은 기재부의 인사 숨통을 틔워 줄 파견 자리의 부족과 연관됐던 것이다.
하지만 이달 초를 고비로 상황이 반전됐다. 3%에 육박하는 성장률을 예고하는 등 확실한 성적표를 보여준 탓일까. 톤을 낮추던 현 부총리가 주요 현안에서 한 박자 빨리, 훨씬 큰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대통령의 신임과 내년 정치 지형상 현오석 경제팀이 2014년 6월까지 건재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면서, 정치권과 기재부 내부의 불만 목소리도 사그라지고 있다.
세종청사 주변에는 '내년 1월을 전후로 대규모 인사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마저 형성되고 있다. 현 부총리가 '파티 종료'를 선언하고 공기업에 대한 강력한 개혁 조치를 예고하자 기대 수위는 더 높아지는 분위기다.
기재부는 부총리가 위원장인 공공기관운영위원회 역할을 부실 기업을 관리하는 주거래 은행 수준으로 높여 공기업의 방만한 경영을 통제한다는 계획이다. 국토교통부, 농림축산식품부 등 주무부처 출신을 최고경영자(CEO)로 보내던 방식에서 벗어나 돈줄을 쥔 기재부가 직접 나서겠다는 것이다.
공기업의 방만 행태를 제어하고 건전성을 회복한다는 데 반대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일부의 기대처럼 채권은행이 부실기업에 자금관리단을 내보내 듯 기재부 출신 경영관리단을 내려 보내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과도한 복지나 천문학적 부채는 드러난 결과일 뿐, 근원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개혁을 명분으로 이뤄진 자기 사람 앉히기 식의 엉터리 인사였기 때문이다.
부디 기자의 생각이 쓸데없는 걱정이 되고, 박근혜 정부의 공기업 개혁이 성공하기를 바란다.
조철환 경제부 차장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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