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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연의 사이아트/11월 18일] 베이컨 대 베이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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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연의 사이아트/11월 18일] 베이컨 대 베이컨

입력
2013.11.17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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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신기록은 언젠가는 깨지게 마련이다. 인간의 한계라고 생각했던 100m 10초의 벽이 깨진 지도 몇 년이 지났고, 마라톤에선 마의 벽이라고 설정한 2시간 돌파가 시간문제다. 그래서 기록은 깨지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말이 있잖은가. 기록은 도달해야 할 목표를 제시하고, 그것을 넘어설 도전의식을 제공한다. 사회적으로 인정도 받고, 부귀영화까지는 아니더라도 가끔 금전적인 보상 기회도 주어진다. 무엇보다 개인적인 성취욕을 만족시켜주고 삶의 의미를 제공한다. 그래서 과학자인 나도 내 삶의 일부분을 정량화에서 그걸 목표로 삼고 가끔 숫자를 체크하곤 한다. 이를테면 매일 팔굽혀 펴기 횟수, 일주일 조깅 시간에서 시작하여, 긴 호흡으로는 내 평생 발표할 논문 수, 건강하게 삶을 영위할 햇수 등이다.

과학 분야도 마찬가지다. 과학이란게 운동경기와는 달라서 단순히 수치로 환산해서 기록할 수는 없으나 과학의 모든 분야마다 소위 말하는 '성배'라는 것이 있어서 이걸 그 분야의 궁극적인 기록 상한선으로 설정하고 열심히 연구하는 것이다. 모든 기록에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불문율이 있다. 바로 정직하게 게임하는 것이다. 과학에서의 정직성은 특히 중요하다. 다른 사람 논문 베끼기, 실험 결과 조작하기 등은 가장 죄질이 나쁜 걸로 간주되어 이를 어기게 되면 과학계에서 영원히 추방된다.

지난주에도 세계기록 몇 개가 깨졌다. 이상화 선수가 500m 빙속에서 이틀 연속 자신의 신기록을 갈아 치웠고, 한 일본인은 네 발로 100m 기어가기 신기록을 세웠다. 이 선수의 기록처럼 어떤 기록은 기록을 세운 자기 자신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고, 더 나아가서 전 세계인이 주시한다. 반면 어떤 기록은 어안이 벙벙할 정도로 우스꽝스런 것도 있다. 예술분야에선 프란시스 베이컨의 작품 하나가 소더비 경매에서 1억400만 달러, 그러니까 우리 돈 1,530억 원에 팔려 이 부분 세계기록을 세웠다. 인플레를 감안하면 23년전 거래된 반 고흐의 작품이 가장 높은 가격이라고 할 수 있으나 단순 숫자상으론 베이컨이 일등이다. 경매 가격이 반드시 작품의 예술성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경매 가격 10순위 이내에 작품 2점이 랭크되어 있는 베이컨은 현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임에는 분명하다. 이번 최고가에 거래된 작품도 20세기 시대정신의 핵심을 표현한 작품이란다.

그런데 사실 예술가 베이컨보다 더 잘 알려진 베이컨이 또 있다. 바로 바로크 시대 살았던 과학자이자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이다. 예술가 베이컨의 이름도 프랜시스이니 동명이인인 셈이다. 실은 예술가 베이컨은 과학자 베이컨의 몇 대 후손이다. 그러니까 한 집안에서 당대를 주름잡은 과학자와 예술가를 배출한 거다. 과학자 베이컨은 귀납법으로 알려진 과학 연구의 방법론을 제시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방법론, 그러니까 인간이 머리를 쥐어짜낸 결과가 가장 숭고하고 진리에 가장 가깝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게 과학계의 지배적인 견해였다. 그런데 베이컨은 이에 반기를 들었다. 관찰을 통해서 사고를 하고, 실험을 통해서 이론을 검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그는 과학혁명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고, 과학 분야만이 아니라 사회과학에서도 그의 방법론은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그는 고기를 신선하게 보존시키기 위해 냉동시키는 실험의 후유증으로 폐렴에 걸려 죽고 말았다.

과학자 베이컨은 영국이 도약을 시작하던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에 살았다. 미술가 베이컨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시대, 즉 20세기 후반에 활동하다가 얼마 전 세상을 떠났다. 그가 활동했던, 그리고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현 시대 영국은 순수예술뿐 아니라 디자인, 패션, 영화, 뮤지컬 등 창조산업 분야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과학과 예술 모두 정국이 안정되고 경제적으로 번영하면 자연스럽게 동반 성장하는가 보다.

원광연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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