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 남편·알코올 중독 아들뒷바라지 위해 안해본 일 없어관절염·우울증 등 온몸 '상처'기초생활수급자로 근근이 생계4000만원 수술비 걱정에도'웃음 짓는 날' 희망의 끈 안놓아
"작은 반찬 가게라도 내서 아픈 가족들을 보살피고, 우리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며 살고 싶어요."
간 장애 1급으로 20년째 간 경화 투병중인 남편 심민철(60ㆍ가명)씨의 병 수발을 하고 있는 김숙희(58ㆍ여ㆍ가명)씨. 11일 방문한 김씨의 집 안은 훈훈하다 못해 땀이 흐를 정도로 더웠다. 김씨는 "아픈 남편이 누워 있어 난방비가 많이 들더라도 항상 집을 따뜻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편 심씨는 간 질환으로 20년 전부터 거동이 불편했다. 합병증으로 당뇨도 생겼다. 간 경화가 심해 하루 빨리 이식수술을 받아야 하지만 어려운 살림에 4,000만원이 넘는 수술비는 큰 부담이다. 병원 측 권유로 최근 간 이식 신청을 했지만 기증자도 없는 상태다.
남편을 대신해 오랜 세월 가족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김씨의 몸도 이곳 저곳 고장이 났다. 퇴행성 관절염으로 오른쪽 무릎이 성치 않고, 심한 스트레스와 우울증으로 신경정신과 치료도 받고 있다.
김씨는 남편이 쓰러진 뒤 가사 도우미, 호떡 장사, 건물 청소, 반찬 가게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새벽에 건물 청소 일을 하고 낮부터 밤까지 호떡을 팔기도 했다. 고된 일상이었지만 남편 병 간호까지 해야 해 "아프고 싶어도 아플 시간이 없었다"고 했다. "가정이 깨지지 않도록 헌신적으로 살았다"는 김씨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생계를 위해 작은 반찬 가게를 냈지만 장사를 하다가도 남편이 갑자기 혼수상태에 빠지면 일손을 놓고 병원으로 달려가야 했다. 장사건 일이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일을 할 수 있으면 일을 하자' '남들에게 손 벌리지 말자'는 게 김씨의 생각이지만 관절염이 심해진 지난해부터는 움직이기조차 쉽지 않게 됐다.
집에 있을 때도 편히 쉬지는 못한다. 김씨는 "남편을 목욕시키고 하루 두 번 인슐린 주사를 놓고 집안 일을 하다 보면 금방 하루가 간다"고 말했다.
김씨에게는 또 다른 아픔도 있다. 희망이었던 아들(31)이 6년 전 군 전역 후 사회생활을 하면서 술에 빠진 것이다. 김씨의 아들은 알코올 중독으로 올해 7월부터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김씨는 아들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술에 빠진 것을 자신의 책임으로 돌렸다. 병상의 남편 뒷바라지와 생활고 때문에 아들에겐 신경쓰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김씨는 "아들을 반강제로 병원에 입원시키고 나서 한 달 동안 잠을 못 잤다"며 "알코올 중독은 100명 중 3, 4명만이 이겨낼 정도로 무섭다는데 아들이 치료를 잘 끝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 기초생활보장수급자로 지정된 김씨 가족은 한달에 70만원씩 생활비를 보조 받고 있지만 남편과 아들 치료비에 생활비까지 쓰면 항상 적자다. 부족한 전세금 500만원을 갚기 위해 집주인에게 매달 4만원씩 내던 것도 15개월째 밀렸다. 전세계약이 곧 끝나지만 은행 대출금을 빼면 손에 쥐는 돈은 2,000만원이 채 안돼 이사는 꿈도 못 꾼다. 도시가스와 수도 요금도 수개월째 밀려 언제 끊어질 지 모른다. 매달 20만원씩 받는 남편의 장애수당이 없다면 생계 자체가 곤란한 지경이다. 김씨는 20년 전 살던 집이 철거돼 천막생활을 해야 했던 악몽이 다시 떠오른다고 했다.
김씨는 그래도 희망은 버리지 않고 있다. 남편과 아들이 건강을 되찾아 웃음짓는 날이 올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김씨는 "간 이식 수술을 받아 남편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고 아들도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 사회에서 한 사람 몫을 하는 날이 꼭 올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또 "예전에 했던 반찬 가게를 다시 내서 가족들을 배불리 먹이고, 남도 돕고 싶다"며 "음식 솜씨와 부지런함은 누구에도 안 질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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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글·사진 이환직기자 slamh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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