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현지시간) 폴란드 바르샤바 국립경기장에서 개막한 제19차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총회(COP 19). 2020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 목표 설정 방식 등을 논의하기 위한 이번 회의에서 단연 주목을 끈 참석자는 사상 최악의 태풍 하이옌이 할퀴고 간 필리핀의 수석대표 예브 사노 기후변화담당관이었다.
자국의 태풍 피해 상황을 전하며 눈물까지 글썽인 사노 대표는 “내 조국이 극심한 기후변화 때문에 정신 나간 상황을 겪고 있는데 이 미친 짓을 지금 여기 바르샤바에서 멈출 수 있다”며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을 호소했다. 그는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단식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필리핀은 하이옌에 따른 사망ㆍ실종자가 17일 오전 현재 4,900명에 육박하고 부상자가 1만2,544명에 이르는 등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이 때문에 194개국 대표단은 그의 연설이 끝나자 일제히 기립박수를 보내 위로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선진국들이 기후변화 대응 논의에 소극적이거나 일부는 역행하는 모습을 보여 필리핀 등 개발도상국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고 16일 보도했다.
외신에 따르면 폐막(22일)을 닷새 앞둔 가운데 중국과 개도국 모임 G77을 포함한 132개국은 산업혁명시대 이후 배출된 온실가스 총량을 연구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선진국들이 이를 거부했고 이에 개도국들은 실망을 넘어 분노하고 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실제로 일본은 자국 내 온실가스 배출량을 2020년까지 2005년 대비 3.8% 감소시킨다는 새 목표를 결정했다. 이 목표치는 앞서 2009년 세운 ‘1990년(교토의정서 기준연도) 대비 25% 감축’에서 대폭 하향 수정된 것이다. 보수 정권이 들어선 뒤 탄소세 폐지를 예고한 호주가 이번 총회에 아예 대표단을 보내지 않는 등 선진국들이 기후변화 대응에 역행하고 있다.
이 때문에 총회 첫날부터 선진국들의 행동을 촉구하며 일주일 가까이 단식 중인 사노 대표의 호소가 이젠 비난으로 바뀐 상황이다. 그는 “몇몇 국가들이 온실가스 배출기준을 낮추겠다고 선언한 것이 매우 우려되고 신뢰 구축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날을 세웠다. 47개 후진국을 대표하는 문주룰 하난 칸 방글라데시 대표는 “오늘은 가난한 나라가 기후변화로 고통받고 있지만 내일은 부자 국가들이 그렇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제 환경보호단체인 기후행동네트워크도 지구온난화 대책에 소극적인 국가에 주는 ‘화석상’의 특별상 수상자로 일본 정부를 선정하고 “실질적으로는 감축 목표가 아닌 증가 목표”라고 지적했다고 교도통신이 전했다.
김종한기자 tell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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