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대의 비사업용(자가용) 헬기가 고층빌딩이 빼곡히 솟은 서울 하늘을 날고 있지만, 특별한 안전 규정이나 구체적 고도제한이 없어 조종사의 비행 실력에 모든 상황을 내맡기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17일 오후 전날 발생한 서울 삼성동 고층아파트 헬기 충돌사고에 대한 국토교통부 사고수습본부 브리핑이 있었다. 하지만 "사고 원인 규명을 위한 블랙박스 분석에 6개월 정도 걸린다"는 것 외에는 사고 경위와 원인에 대한 어떤 설명도 내놓지 못했다. 16일 오전 8시54분 박인규(58) 기장이 몰던 LG전자 소속 HL9294 S-76C 헬기가 서울 강남구 삼성동 아이파크 아파트와 충돌해 박씨와 부기장 고종진(37)씨가 숨졌다. 사고 직후 한강을 따라 비행해야 할 헬기가 예정경로에서 떨어진 건물과 충돌한 것에 대해 여러 가지 의문이 쏟아졌지만, 사고 발생 하루가 지난 후까지 교통당국은 항로 등 기초적 사실마저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 서울시민들의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있다. 심지어 '하루 몇 대의 헬기가 서울 하늘을 오가는지'에 대한 질문에도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국토부에 따르면 국내 헬기 등록대수는 2003년 63대에서 올해 5월까지 182대로 3배 가까이 증가했고 이 중 민간헬기는 109대이다. 여기서 소형항공운송사업을 목적으로 등록된 18대를 제외한 91대의 헬기가 이번 사고기와 같이 대기업 등이 운행하는 자가용헬기다.
그런데 헬기가 도심 상공을 비행하는 것과 관련된 전용 안전감독매뉴얼은 아직까지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다. 때문에 헬기 조종사들은 주로 안전을 위해 한강 변이나 고속도로ㆍ간선도로 상공의 우측항로를 따라 비행하고 있다. 게다가 조종사가 육안으로 조종하는 시계비행을 할 경우엔 '인구밀집지대 운항 시 장애물로부터 최소 300m떨어져 비행하라'는 규정 외에 별도의 고도제한조차 없는 실정이다. 이런 제도 미비 지적에 대해 장만희 국토부 운항정책과장은 "헬기 전용 안전감독 매뉴얼 제작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민간헬기의 운항경로를 파악하는 시스템도 없다. 사고가 난 LG전자 헬기는 이륙 후 2분 만에 관제탑과 교신하고 6분 후 충돌했지만, 서울항공청은 6분 간의 비행 경로를 전혀 모르는 상황이다. 김재영 서울항공청장은 "일반적으로 민간 헬기는 이륙 때 교신하고 김포공항 관할 공역을 벗어나거나 30분 이상 행방불명이 되는 경우를 제외하면 비행 중에 추가로 교신하지 않는다"고 말해 민간 헬기의 운항 경로를 알 수 없는 구조적 문제점을 드러냈다.
소형항공사업용 헬기들은 1,300개 점검사항이 있는 운항증명제도에 따라 각종 안전 점검을 받지만, 자가용 헬기는 지방항공청에서 운항과 정비 분야에 대한 기본 점검만 받는다. 이번 사고가 기체 결함으로 발생했을 가능성은 현재까지 매우 낮지만, 자가용 헬기도 도심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대형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헬기의 주요 운항 경로인 한강변이나 남부순환로상 고층 아파트에 대한 추가적인 안전장치를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정성남 건국대 항공우주정보시스템 공학과 교수는 "현 항공장애등의 밝기를 더 높이고 고층 아파트 층수 기준을 정해 해당되는 아파트에는 추가적인 안전장치 설치를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배성재기자 passion@hk.co.kr
이환직기자 slamh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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