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 아침 서울을 뒤흔든 삼성동 아이파크 아파트 헬리콥터 충돌ㆍ추락 사고는 일단 짙은 안개가 일으킨 참사로 정리되는 분위기다. 사고기가 항로를 이탈하고, 충돌 때까지 초고층 아파트의 존재조차 인지하지 못했던 것도 가시거리 1㎞ 전후에 불과했던 안개 탓이었을 개연성이 높다. 문제는 민간 헬기의 경우 일기조건 등을 명시한 안전운항 매뉴얼 자체가 아예 없다는 것이다. 조종사가 근거 없이 안전운항만 고집하기 어려워 위험천만한 비행을 감행할 수밖에 없었던 게 이번 사고의 본질인지 모른다.
사실 일반인이 볼 땐 사고 가능성이 없는 비행이었다. 사고 헬기만 해도 미국 시콜스키사가 2007년 제작한 S-76C기로 '하늘의 리무진'으로 정평을 얻은 최고 안전도의 고급기종이었다. 사고로 숨진 박인규 기장은 공군에 20년 이상 근무했고, 대통령 전용기를 몰았을 정도의 베테랑 인물이다. 그런 자신감 때문에 오히려 당일 아침 고인이 회사에 거론한 짙은 안개도 '극복 가능한 사소한 문제'로 일축됐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현재 군용 외에 등록된 민간 헬기는 183대다. 그 중 기업 등이 보유한 순수 민간 헬기에 대한 안전관리는 거의 없는 상태다. 특히 최고 경영진이 주로 이용하는 기업 헬기는 비즈니스 특성 상 필요 시 즉각 운항 태세로 관리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행 헬기 운항규정은 도심이나 비행 통제구역에 진입하지 않는 한 비행 1시간 전에 제출하는 계획서 외에 따로 규제를 받지 않는다. 결국 기상조건 등을 따져 비행 여부를 판단하는 게 전적으로 조종사 몫이 되다 보니, 안전운항을 고집하다간 자칫 능력 없는 조종사로 몰리기 십상이다.
정부는 이번 사고를 계기로 33개사가 보유한 민간 헬기에 대해 특별안전점검을 실시하고, 안전운항 지원체계를 지속 관리하는 운항증명제도 도입을 검토한다고 한다. 또한 건설 중인 제2롯데월드 건물을 포함해 도심 초고층 빌딩의 항공운항 안전성 재검토 계획도 거론된다. 하지만 당장 절실한 건 조종사가 안전운항을 주장할 때 근거로 삼을 구체적 매뉴얼이다. 정부는 헬기 안전운항을 담보할 매뉴얼 마련부터 서두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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