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해 최근 문을 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 전시에 민중미술가 임옥상씨 등의 작품이 미리 전시장을 둘러본 청와대의 압력으로 행사 직전 전시에서 제외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임옥상 작가는 17일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미술계 관계자로부터 개막 전 전시장에 온 청와대 직원들이 나의 그림을 비롯해 몇몇 작품에 대해 '곤란하지 않느냐'는 얘기를 하고 갔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며칠 뒤인 12일 미술관 개막식에서 실제로 작품이 빠진 것을 확인했다"며 "다음날 전시를 기획한 정영목 서울대 교수와 통화하던 중 '외압으로 인해 임 선배와 이강우 작가의 작품 두 점이 빠졌다, 미안하다'는 말을 들었다"고 설명했다.
문제가 된 전시는 일제강점기부터 현대까지 한국의 시대상을 그림으로 회고하는 '자이트가이스트-시대정신'전. 정 교수가 외부 기획자로 작품 선정이나 전시 구성을 주도했다. 이 전시에는 당초 문익환 목사가 휴전선 철조망을 넘는 모습을 담아 남북 분단 극복의 염원을 표현한 임 작가의 대표작 '하나됨을 위하여'(사진)와 이강우 작가의 '생각의 기록'이 전시될 예정이었다. '생각의 기록'은 찢기고 긁힌 사람들의 얼굴을 통해 1980년대의 암울한 사회상을 표현한 작품이다.
임 작가는 하지만 "15일 정 교수와 직접 만난 자리에서 말이 바뀌었다"며 정 교수에게 "진실을 밝히는 게 어려우면 중립이라도 지키라"고 말하자 그가 "외압으로 보지 마라, 외압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고 답변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정 교수는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애초에 외압이라는 말 자체를 꺼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미안하다'는 말은 무슨 뜻이냐는 질문에 그는 "작가와의 친분에도 불구하고 전시에 작품을 넣지 않은 것에 대해 미안하다는 뜻"이었다며 "전시장에 청와대 관계자들이 온 줄도 몰랐고 그들과 말도 섞은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국립현대미술관 최은주 학예연구1실장은 "전시를 위해 수장고에서 120점을 가져왔는데 최종 전시된 것은 59점"이라며 "문제가 된 작품 두 점은 제외된 수십 점 중 일부"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청와대 직원들이 미술관을 사전 방문한 것은 맞지만 안전점검을 위한 것이고 작품 얘기는 전혀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임 작가는 "중요한 것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력의 과도한 개입"이라며 "지금이 박정희 시대도 아닌데 도대체 왜 이런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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